우리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by 예나네


2022. 12. 23. 금.


그러니까, 3개월 만에 만났다. 그동안
서로가 좀 바빴기 때문이다.




영어교실에서 우린 1년이 넘도록 한 주에 두 번씩 보던 사이였다. 수업시간에 조용하게 생글, 웃던 젊은 그녀는 내가 학교를 그만둔 후에도 가끔 안부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이차이가 스무 살이 넘게 나지만 무언 중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가.



겸손하고 배려하고 잘 웃어넘기고, 수줍음을 타면서도 영어로 발표할 건 차분하게 최선을 다 하던 그녀가 난 믿음이 갔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문자를 보냈으니 반가웠다.

그녀도 나도, 시끌벅적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둘이 오손도손 있는 걸 선호한다. 우린 자연스럽게 서로의 집을 번갈아가며 점심을 함께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녀는 자기 나라, 난 우리나라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오늘은 내가 그녀의 집에 갔다.




호주사람들은 보통 식사초대를 받으면 음식 한 가지씩을 만들어간다. 나는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잡채를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리스마스 파티니까 알록달록하게 요리했다. 강피망 파랑피망 붉은 당근 하양 양파 검은 표고 감칠맛 불고기 초록 브로콜리 해맑은 당면 위에 고소한 참깨와 참기름을 듬뿍 뿌려 서로 섞었다. 딸이 맛보더니 맛있다고 했다.

그녀를 위해 뜨개질해 두었던 크리스마스 리스와 카드 전날 챙겨두었다.



옆집 칼리할머니는 내가 스리랑카 여인, 그녀를 만날 때 대화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했다. 내가 영어로 말한다고 하자 우스워죽겠다는 듯 배꼽을 잡으신 적이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끼리의 의사소통이 과연 어떤 광경일까, 하 칼리는 아직도 궁금 게다.



사실, 의사소통이란 동일한 랭귀지를 사용하는 게 제일 잘 통하는 건 당연지사. 한국사람이 한국사람끼리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쌈빡며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나의 경우, 영어에 관한 문법과 어휘가 풍부하면 스피킹이 더디더라도, 원어민보다 아예 타국사람끼리 이야기할 때 마음이 편하고 소통이 더 잘 된다. 예를 들면 내가 호주 원어민인 칼리하고 이야기할 때보다, 스리랑카에서 온 그녀와 이야기할 때 대화가 완만하게 이어진다.



우리끼리는 바디랭귀지로 뭔가 더 깊숙이 통하는 면이 있고, 끝까지 말을 안 해도 상대방의 심중에 대한 이해 혹은 공감대가 퍼뜩 전해오기 때문이다. 최소한 나와 그녀 사이에서 이어지는 대화는 그렇다.



자기 나라에서 10년 간 의사로 일했던 그녀가 요즘은 아이엘츠 공부까지 하고 있으니 영어어휘를 줄줄이 꿰고 있다. 캠퍼스 커플인 그녀 남편은 여기서 정신과의사로 일 한 지 2년째인데, 집에서는 서로 자기 나라 말을 사용하니까, 행히도? 그녀의 영어스피킹이 물 흐르듯 유창하진 않아서, 난 주눅 들지 않고 편하게 말하게 된다.



우리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렌트로 살던 그녀는 한 달 전에 집을 사서 그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큰 바위얼굴처럼 꿈쩍도 않던 이곳 시골의 하우스 값도, 팬데믹 기간 동안에 한국돈으로 1억씩은 올라있었다. 그러나 한국 시골이 그러하듯 이곳 시골 집값도 시드니 집값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저렴하다. 그녀 집엔 같은 나라에서 온 그녀 친구네 산다.



언덕 위 그녀 집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경이 절경이다. 마디로 스펙터클 하다. 뷰를 즐기기 위해 집 뒤쪽의 펜스는 아예 없앴다. 난 백만 불이 있어도 이런 뷰는 사지 못할 거라고 하니, 그녀가 생긋생긋 웃었다.

주택 융자를 많이 해서 절약을 해야 한다니, 어디에 살든 주택융자가 젊은이들 발목 잡는 주요인이 되고 있나 보다.



그럼에도, 호주사람들이 선호하는 북향인 이 집은 저 우람하고 커다란 유클립투스 뭇가지가 만들어내는 산들바람과, 얀 햇살과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과, 까치의 깜짝 방문까지 받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곳이 바로
패러다이스라고 말했다.



잔디는 자기 펜스 안에 것만 깎고 바깥은 공원이니까 정부에서 할한다. 그녀는 란다에 가만히 앉아서 자연으로부터 오는 이 아름다운 천혜의 선물을 리기만 하면 되는 특혜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이 어디 패러다이스만 있는가. 양념 같은, 고민이나 고뇌가 빠질 수는 없는 게 우리의 삶이다. 우린 이런저런, 살아온 고통과, 살아가는 고뇌와, 살아갈 희망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차를 마시고, 케이크와 비스킷을 맛보았다.

그녀의 음식과 내가 들고 간 음식을 서로 맛있다 칭찬을 곁들이며 속정을 담뿍 나누었다. 시계를 보니 2:50 pm.이다. 10시에 왔으니 거의 다섯 시간이 졸졸졸 흘러가 있었다. 오늘 우리의 교제, 뷰~티풀이다.



우린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걷는 걸 좋아하니까 하루는 함께 산책을 하고, 하루는 우리 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나라로 휴가를 갈 다.


우리가 2주 동안 2년을 함께 한다고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여유롭게 오늘을 마무리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로 살빛 다른 사람들의 우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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