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끼리 놀다가
영어가 서로 안 통할 땐 어떻게 해?
- 홍콩커플을 초대해서 다섯 시간을 놀았다
2022. 12. 27. 수
이방인끼리 놀다가
영어가 서로 안 통할 땐 어떻게 해?
한국에서 지인이 물었다.
한국의 그녀가 궁금하듯, 호기심쟁이 칼리 할매도 홍콩사람과 내가 대화하다 마주칠 수 있는, 이 지점이 의아할 것 같다. 그러니 그리도 깔깔 웃었을 게다.
사실, 영어가 어느 정도 되면, 서로의 바디랭귀지가 자발적 도우미로 나서니, 소통하는 덴 큰 문제가 안된다. 의사소통의 7,80%는 바디로 한다지 않은가. 눈빛, 손짓, 발짓 같은.
8개월 만에 만난 홍콩커플의 영어 스피킹과 리스닝실력이 많이 늘어있었다. 나 또한 연습의 끈을 내려놓지 않았으니, 좁쌀만큼이라도 실력이 붙었을 게다.
브리즈번이나 시드니에 살 때는 영어로 말할 일이 별로 없었다. 한국친구들만 사귀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틈틈이 영어를 배워두긴 했지만, 여기 호주시골에서만큼 적극 열심이지도, 자주 써먹지도 않았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는 정도의 영어를 사용했었다. 친구 중 영어를 젤 잘하는 사람이 나서서 주문을 했는데, 나는 선수로 뽑혀 본 기억이 없다. 그때 실력으론 오늘처럼 나 혼자 홍콩커플을 초대할 엄두는 못 냈다. 영어실력이 턱없이 달렸으니까. 난 요즘 여기서는 애써 한국사람을 안 사귄다. 겨우 익힌 영어를 금방 까먹고 마는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을 좀 더 여유롭게 부리고 싶은 마음도 크다.
칼리 할머니는 내가 그녀의 단어나 발음을 못 알아차리면 쉬운 영어로 천천히 풀어서 말해준다.
그러나 영어가 서로 세컨드랭귀지인 사람들끼리는 어떻게 할까. 한국의 그녀와 통화를 끊은 후, 오늘 홍콩커플과의 대화내용을 곰곰이 되돌림 해보았다.
우리 집 게라지 앞에다 파킹하고 온 홍과 세라를 맞으며 난, 근질거리는 입방아부터 찧었다. 나, 지난달에 홍콩 갔다 왔어.라고. 그러자 그들은 현관에서부터 벌어진 입을 거실에 닿을 때까지 다물지 못했다. 내가 자기네 집 다녀온 듯 반색을 했다. 한편으론, 홍콩 가기 전에 왜, 자기들한테 연락 안 했냐고 아쉬워했다.
그들도 나처럼 입이 가려웠는지, 지난 한 달 동안 태국에 있었다며, 바로 이실직고? 했다. 세라가 간호사로 일한 지 1년 되었으니, 매 분기마다 1주일씩 주는 휴가를 저축하듯 알뜰히 모아두었다가 태국 한달살이를 하고 돌아왔단다. 내년 휴가 때는 자기 나라로 갈 계획을 세워두었다고.
열한 시 반에 온 그들과 서로 입방아만
콩콩 찧다 보니 출출했다.
우린 뷔페처럼 각자의 쟁반에 음식을 덜어가서 식탁에 둘러앉아 나머지 회포를 다시 풀어놓았다. 아, 그들은 내가 조촐하게 차린 코리언 푸드사진과 사람들을 먼저 찰칵찰칵, 찍었다.
그들이 김치찌개, 김말이, 잡채, 떡볶이를 몇 번 다시 덜어다 섭취했듯이, 자기네들 이야기보따리도 술술술 수월하게 풀어놓았다. 국경을 넘어 서로가 즐겁고 행복해했다. 하하 호호 웃는 시간이 잦았다.
내가 홍콩물가가 비싸서 실제 쇼핑은 거의 안 한 채, 윈도쇼핑만 즐기다 왔다고 하자, 그들은 부담 없는 태국에서 맛집, 마사지 투어를 실컷 즐기다 왔단다.
내가 받은 홍콩 마사지는 한 시간 반에 70불 (7만 원 정도) 이더라니까, 태국 건식 마사지는 두 시간에 20불 하더란다. 한국, 호주, 홍콩에 비해 태국물가, 엄청 착하다는 걸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한식을 워낙 좋아해서인지 아예 한국말로 "고기 뷔페"라 이름 지어 불렀다. 둘이 들어갔는데 실컷 먹고 2인분에 2만 원을 냈다며 태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던 커플의 목소리엔, 아직 그 당시 행복의 잔영이 잔뜩 어려있었다.
나도 다음번에는 홍콩 말고 태국으로 가서 여유로운 소비활동을 즐기겠다고 하며 또 다 같이 웃었다.
내가 홍콩에서 21층의 고층숙소에서 묵었다고 하자, 그들은 홍콩에 있을 때 66층에서 살았단다. 그 아파트가 얼마 정도 하냐고 물었더니 15억 정도란다. 홍콩도 한국이나 시드니처럼 요즘엔 집값 내림세가 지속된다고.
같은 반에서 산전수전 동일하게 겪으며 영어를 함께 공부했던 급우여서 일까. 우린 나이와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재미있고 쿨하게 어울려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서로 세컨드랭귀지인 사람끼리 대화도중, 영어가 어려울 때는, 상대방이 시간을 충분히 갖고 천천히 말할 수 있도록,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으며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시나브로 사태? 가 해결된다. 그 사이에 나의 영어도 배양되고 배려심도 길러진다.
다행히 서로의 마음이 가까우니 대화는 물 흐르듯 잘 흘러갔다. 아시안이라는 공통분모가 마음을 편하게 하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친교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외국인끼리도 친교는, 말보다 마음에 있었다.
연말이 되어 세라가 간호사로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한 사람씩 다 같이 상을 주기로 했는데, 세라는 영어실력이 향상된 상을 받았다며, 자신의 폰에 저장된 상장을 보여주어서 우린 박수를 치며 축하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붉은 서녘으로 지고 있었다.
우린 포옹을 하고 손을 흔들어 헤어짐을 표시해야 했다. 난 어제 뜬 편물을 떢볶이랑 김치와 함께, 세라에게 전해주었다.
세라가 웃었다.
홍도 웃었다.
Ps, 그들과 나눈 좀 긴 이야기를 깜빡 잊고 안 적어서 추가합니다. 그들이 여기서 겪은 기가 차고 코가 막힌 사연입니다. ^^
; 세라와 홍이 태국 가던 날 새벽에 공항 갈 택시를 예약했었는데, 그들이 예약한 택시회사에서는 5시에 택시가 없다며 안 보내줘서, 맘만 급해진 두 사람은 네 발만 동동동동 구르고 있었단다.
하는 수없이 홍이 자기 차를 운전하여 세라를 우선 공항에 먼저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라가 체크인하는 시간에 홍은 차를 집에 두고, 공항까지 20분을 뛰어가다가 마음이 급해도 너무 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각의 비행기를 놓치면 필리핀을 거쳐, 최종 목적지 태국까지 예약한 두 사람의 비행기 티켓과 한달살이 숙소예약이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되니, 거금을 손해 보게 될 지경이었단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떨리고 급했겠는가. 더구나 1년밖에 안 살아본 이역만리타국에서.
홍은 발이 안 보이도록 헐레벌떡 뛰다 말고 도중에 차도에서 아무 차든, 닥치는 대로 세워보려고 손을 흔들었단다.
그러다 착한 호주 할머니가 이 새벽에 뭔 일이 일어났냐며, 땀을 뻘뻘 흘리는 홍을 보고 놀라서 가던 길을 돌려서 공항까지 태워다 주셨으니, 그들은 간신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 할머니는 제삼자인 내가 들어도 고맙기만 했다.
그러나 택시회사는 얼마나 나쁜가. 이렇게 여기도 무개념의 사람들이 있다. 일종의 인종차별이기도 했다.
세라는 다음부터 우리가 공항 갈 일이 있을 땐 자기 신랑, 홍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기꺼이 공항까지 모셔준다고.
그날이 그들에겐 웃지 못할, 최악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건 트라우마로 남을 터,
그들의 그날을 소환하는 지금, 내 마음으로 짠한 노스탤지어의 고독이 싸하게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