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잎 지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말리는 고추도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한다. 절정의 단풍색이 있듯 태양빛을 먹은 태양초도 그러하니, 건조되어가는 고추 곁에서 색을 지켜봐야 한다.
참고로, 한국에서 15년 간 과수원살이하면서 우리가 먹을 고추를 거둘 땐 그러지 않았다. 포대에 담아둘 땐 생쥐란 놈만 주의하면 되었다.
고추색이 확연히 변하여 뜨악해진 기억은 없다. 평택에서는. 고춧가루가 필요할 때마다 오산 장날, 시장 안 방앗간에 싣고 가서 참기름이랑 같이 빻고 짜 오던 날은 왠지, 부자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밑반찬거리를 저장해둘 때마다 주부의 마음은 풍년이다.
코로나 기간부터, 호주에서 말리는 홍고추는 한국에서 나의 젊은 날 보던 것과 조금 다르다. 태양의 온도가 다른가. 흙의 성분이 다른가. 씨앗의 종류가 다른가.
여하튼 지난해, 홍고추를 말리며 지켜본 경험으로는 고추의 색깔이 고울 때 하룻저녁이라도 지체하면 깔이 거뭇거뭇하게 시나브로 변색된다. 하룻저녁이면 열 시간이니, 그동안 갈지 않고 그대로 두면 색깔변화가 심해도 너무 심해진다. 그러니 적당한 시간에 갈아서 가루를 제조해야 한다. 맞다, 시간이 금이다.
하룻밤 사이에 색깔이 이렇게 변화된다.
그러니 호주에서 어렵사리 말린 태양초가 어느 정도 마르면, 지체하지 말고 1인 고추방앗간을 후딱 차려야 한다.
어제, 마른 고추만 골라내어 커터기에 넣고 갈아보았다. 상당한 양의 고춧가루를 얻었다. 커터기는 큰 것과 작은 것을 번갈아가며 2회에 걸쳐 갈아야 고춧가루로 완성된다. 그럼에도 한국 방앗간에서 빻은 고춧가루보다는 많이 거칠다.
말리고 있는 고추의 일부분만 갈았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이 나왔다.
커터기에 들러붙은 고춧가루가 아까워서 물을 붓고 휑궈내어 무와 파를 송송 썰어 넣어 뽀글뽀글 어묵국을 끓였다.
어묵국 속의 내가 만든 태양초는 생각보다 백배는 더 맛있었다. 고춧가루는 너무 맵지도 순하지도 않았다. 칼칼 달달 시~원했다.
오늘도 나는 이국의 햇살로 고추를 말린다. 변화되는 색상을 보다가 마른 놈들을 골라내어 얼른 1인 고추방앗간을 차려 고춧가루를 만들 것이다. 아마도 이 작업은 내일까지 이어질 듯싶다. 콩나물도 누워 자란 놈이 있듯이, 태양초도 먼저 마른 놈, 나중 마른 놈이 있으니, 그놈들을 하나하나 지켜보며 그들의 시간을 기다릴 것이다.
* 그간, 고추를 말리는 동안, 함께 읽어주시고, 라이킷해주시고, 댓글로 응원해주신 브런치 글벗님들, 정말로 사랑합니다. 물론 엄청 고맙고요. 덕분에 여기 제가 있는 곳이 나의 고국 한국같이 포근하게 느껴져요. 감사드려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