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 태양초로 김치를 담았다

by 예나네


거친 고춧가루를 도깨비방망이로 보드랍게 간 게 신의 한 수였다.




코로나가 시작되고부터 고춧가루 반입이 안되어 국에서 고추를 말려 태양초를 스스로 만든다. 며칠 전에도 심술쟁이 비를 피해 가면서, 맑은 바람, 따끈한 햇빛과 담합하여 어렵사리 건조한 태양초를 커터기에 갈아서 고춧가루를 만들었다. 커터기는 노란 고추씨앗을 다 분쇄하지는 못했다. 춧가루가 거칠었다.


오늘 순도 100% 그 태양초를 냉동실에서 꺼내었는데, 이걸로 김치를 하면 고춧가루는 절임배추와 원만하게 어울리지 못할 것이 뻔했다. 고춧가루가 배추에 착착 감겨야 빨간 김치색깔이 나오는데, 그러기엔 고추와 배추가 장작개비처럼 뻘쭘할 것을, 난 지난해의 경험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작년에는 여기 한국마트에서 사 온 고춧가루를 조금 섞어서 했더니 김치색깔이 곱게 나왔다.


이번엔 순도 100% 태양초가루만 넣을 궁리를 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하얀 배추와 빨간 고추가 협치를 하게 될까. 김치의 대표주자인 이 둘만 잘 어울린다면, 국민들인 마늘, 파, 부추, 무생채, 설탕, 액젓, 새우젓, 간사과, 간양파, 매실즙, 두 스푼의 밥알은 자연하게 따라갈 것이니, 김치는 달달매콤 하게 맛있을 수밖에 없다.


난 거친 고가루를 배추절임물 한 컵과 께, 위의 재료를 한 군데 다 같이 때려 넣고 윙~ 윙~ 갈기 시작했다. 재료들은 도깨비방망이의 서클 댄스 몇 번에 의해 담박, 빨갛게 변했다. 판 모르던 타인들이 단숨에 하나로 뭉쳐졌다. 역시나 때에 따라 자아를 부수니 협치가 잘 되었다. 커멓게 친 가루는 보드랍고 이쁜 색으로 변했다.

설탕과 다른 재료를 함께 버무려 온갖 재료 위에 올려놓으니, 빨간색에서 자르르 윤기가 난다.





난 따로따로 노는 재료들을 하나로 버무렸다. 그래야 일이, 김치가 된다.



고춧가루가 성글 땐 다듬지 않은 글, 글과 글 사이가 어색한 초고처럼, 고춧가루와 절임배추가 서로 어우러지지 못했었다. 서로 협치가 되지 못하여 김치맛이 입속에서도 따로 씹혔었다. 그렇게, 지난해 내가 처음 만든 태양초 김치는 김치맛이 아니었었다.


이전의 부족한 부분을 고쳐서 이번엔 서로 어울림을 실천하게 되었다. 커터기로 바숴지지 않았던 고추씨앗을, 물과 융합된 도깨비방망이로 부수어서 고운 가루를 창출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고운 가루만으로도 김치의 재료로 온전히 충족되진 못한다.


그래서 노란 씨앗이 그대로 있는 거친 고춧가루 두 스푼을 푹 퍼서 속 버무리는데 섞었다. 역시 자아를 잘게 부수어서 무언가에 열정을 폭 쏟을 때, 결과물의 색상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분쇄된 가루와 거친 가루가 적절하게 섞여, 균형을 이룬 고춧가루는 배추와 잘 어우러진다. 빨갛게 물들어 아주 맛있는 김치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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