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비 와

- 때로 생은, 불현듯 소나기를 맞는다

by 예나네


2023년 1월 7일 새벽 3시 12분에 딸이
나를 깨웠다.



순식간에 잠이 확 달아나 문을 확 열고, 엊저녁 황금알 - 이세정 작가님의 황금과 나의 알, 그리고 Anna 작가님의 황금알 (이전의 본글과 댓글을 보시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습니다.) - 을 낳은 고추테 달려갔다.



일기예보를 내가 왜 믿었을까.

어제 빗나간 일기예보를 보고도 왜 나는 왜, 밤에 비가 안 온다고 정했을까.

내가 나를 믿었을까. 아님 귀차니즘이었을까.

노, 노, 밤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쐬게 하여 물컹물컹하던 고추의 몸이 아주 쪼끔이라도 더, 삭하게 거풍 되길 바라는 정이었.



초저녁부터 만월이던 달빛 또한 나를 득하는 일에 일조했다. 달빛 한 모금 바람 한 줌이라도 더 쐬도록 마당에다 고추를 널어놓고, 나는 방에 들어와 속에 빠져있었던 거다.



지나가던 밤비를 살짝 맞아버린 고추가 다시 물컹해져 버렸다. 오, 마이 갓. 도로아미타불. 안타까움과 후회스러움을 가득 안고, 그래도, 고추를 다시 베란다로 옮겼다. 행여 모를 또 다른 비를 피해야 했다.

딸이 달밤에 체조하듯 급히 거들었다.

딸한테도, 고추한테도 미안했다.



젖어버린 물고추를 만진 분주함 속에서 브런치 작가 한 분 한 분 스쳐 지나갔다. 유구무언. 답글로, 라이킷으로 진심 어린 응원을 해 주었는데. 정한 글벗들인데. 다시 난감.

시계는 새벽 세시 반.



집안으로 들어와 환한 불빛에서 보니 내 손이 온통 벌갰다. 컹해진 추가 내 손에다 붉은 물을 들여놓았다. 맨손으로 물컹한 고추를 거둬들인 손이, 어제보다 좀 더 화끈거린다. 손의 느낌도 애석한 맘 동화된다.



황금알도, 고추도, 내 것으로 온전히 지켜내기 위하여, 갈무리가 곧 수월치만은 않은 게 인생임을 이번 일을 통하여 배우고 있다. 생은 기승전결을 지닌 한 편의 다이내믹한 드라마임을 실감하고 있다. 지금.





지나가던 밤비를 맞고 다시 베란다로 급히 들려온 고추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끝날까. 아무도 단정할 수 없는 우리의 그것처럼, 고추의 미래 또한 이 세상 누구도 모를 것이니.




난 지금,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글을 촬영하고 쓰는 중.
다음 호에 계속.


나는 친절한 드라마를 쓴다. 왜냐하면 나의 글벗 브런치 작가님들한테 다정하고 싶어서.




다행히 아침이 해를 데리고 나타났다. 나와 딸을 *개 훈련시켰던 비란 놈은 도적떼같이 사라졌으니 행운의 날이다.

이번엔 뒤꼍에 있던 갈고리를 갖고 나와 붉은 고추를 헤쳐 모이기 했다. 조막만 한 나의 손보다 몇 곱절은 편했다. 진즉에 이걸로 했어야지. 여기서 또 하나 배운다.



고추의 뫼비우스의 띠가 안과 밖을 몇 번 더 들락거려야 젖은 고추가 마른 고추로 완성될까. 나는 또 몇 번의 시지프스 돌을 들고 오르내려야 할까. 오늘 일어날 일들이 몹시도 궁금하다. 선은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햇살이 젤 고맙고 이쁘다.


그러다 때로 생은, 불현듯 소나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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