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우리 히말라야 가겠다

by 예나네




오늘 아침 한국 텔레비전에서 뉴질랜드 최고봉 마운틴 쿡이 나왔다. 만년설 봉우리가 하얗게 솟은 산중 트레킹 코스 경관이 장관이었다. 릿 화면 앞에서 딸이 말했다.


엄마, 우리 이제 여기도 트레킹 도전 해 봐야지.

딸아, 니, 진짜 마이 발전했다.


여행코스에 매번 몬트빌을 넣는 이유는, 산속마을 유럽풍의 아기자기 어여쁜 가게도 가게지만, 콘다릴라 내셔널파크의 트레킹 코스가 더 크다.

숙소에서 5분만 가면 다릴라 스라는, 왕복 두어 시간짜리 트레킹 코스가 나온다.


이름에서 짐작되듯, 시간 짓 좁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걷다 보면 깊은 산중의 레킹 코스 막바지에서 80m는,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이 하얗게 내려 꽂히는 기다란 산폭포를 만난다.


이곳 트레킹 코스 중 특이한 것 중 하나는, 꽤 많은 등산객 수영복을 싸들고 간다는 거다. 이 폭포수 발치엔 커피색 물을 군데군데 담은 웅덩이가 기다리니까. 놀기 좋아하는 그들은 폭포수로 수영을 한다.


우리가 간 날도 마침, 사선녀들이 내려가 목욕 중이었다. 산밑과 산중턱의 서로 먼 거리에서 보이는, 헤엄을 치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사선녀들은, 나의 시샘을 유발할만치 예뻤다.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다. 난 딸을 앞에 두고 아주 잠깐,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

'나의 딸은 왜, 저 운치 있는 물놀이가 그리 설레지도, 즐겁지도 아니할까.

엄마인 나는 설레는데.'




트레킹을 하다 보면 훅, 말 걸어오는
사람이 반가울 때가 있다.



하와이에서 오셨다는 그는 거의 팔순은 되어 보였다. 저 멀리 폭포수를 바라보는 전망대 앞에서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폰을 들어 올리자 자리를 비켜주면서, 나보다 폭포가 더 좋지, 그렇지? 하며 농을 걸어왔다. 그러자 일행인 나머지 3명이 같이 따습게 웃으면서 우린 서로, 함께, 걷다가 쉬다가 하는 도반이 되었다.


브리즈번에 사는 동생부부를 방문하여 부부동반으로 3주 동안 호주에 머물 거라는 할아버지는, 안녕하세요,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를 한국말로 잘하셨다. 하와이에 한국 친구가 많다했다.

나의 딸을 보고 하이스쿨학생인지 물어서 대학졸업하고 일을 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하자, 깜짝 놀라기도 하셨다. 의 앳된 모습에 놀라는 타인들의 반응이, 난 이제 놀랍지도 않다.


폭포수 밑에서 할아버지 가족들이 쉬는 동안,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찰칵 찍었다. 역시나 턱수염 하와이 할아버지가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선샤인코스트 워킹클럽"에서 스무 명이 단체로 온, 그들 중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그는 내가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와우, 하며 반가워했다.


3월에 네팔 에베레스트로 원정등반을 가는데 이틀밤을 서울에서 묵다니, 더 반가웠을 테다. 그는 우리 한국 '영 컨츄리'라 표현했다. 아마도 1950년 전쟁 후, 대한민국 빠른 경제성장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슬로바키아 아내와의 사이에 네 자매를 두었다는 그와 같이 타박타박 걸어오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입구의 주차장까지 왔다. 그는 내가 물병을 잊고 안 갖고 와서 탈수증이 걱정되었는지, 자기 차에서 새물병을 꺼내와 나와 딸에게 내밀었다.


딸은 낯선 물을 마실 리가 없었다. 내가 나서서 그의 온기 어린 마음을 두 손으로 고맙게 받았다. 두어 시간 동안 차 안에서 미지근해진 그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우린 헤어졌다. 돌아오는 마음이 따스했다.




콘다릴라 공원을 트레킹 한 여독으로 우리 두 사람 모두, 장딴지에 알통이 배겼고, 일어설 때마다 아파서 행복한? 상을 찡그리는 중이다. 그래, 올해는 더 먼, 장거리 코스를 돌고 와서인지 가슴이 더 부~자 된 기분이다.

오늘 아침에 딸은 뉴질랜드 마운틴 쿡에 가자했겠다, 딸아, 이러다 우리 히말라야까지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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