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외롭다.
외국사람들 속에 오리처럼 섞여있을 때도 그렇다. 오늘 U3A바느질반에 나까지 23명의 호주할머니들이 모였다. 몇 사람씩 팀으로 어울려 자수를 놓고, 재봉틀로 박음질을 하고, 뜨개질을 하였다. 평소보다 출석률이 높았다.
그들도 얼음처럼 쓸쓸함을 교실에다 녹여내려고 이곳 문화센터에 모였을 터. 손에 든 작업보다는 하고 싶은 속말을 입으로 쏟아내는 일이 우선이니 교실이 순식간에 와글와글거렸다. 내 귀를 그들의 말소리에 바짝 기울였으나 좁은 공간에 든 데시벨들이 서로 엉겨버려서 내 인지기능을 방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들 말소리는 개구리소리 같은 소음이 되었다.
내 옆 할머니도 와글거리는 분이었다. 가끔 나한테 뭔가를 묻는데 내가 대답하면 귀가 어두워 듣지를 못하셨다. 겸손한 할머니들은 나의 억양을 못 알아들을 때마다 자기 귀를 핑계 댄다. 서울과 경상도 억양보다 몇 곱절은 다른, 나의 잉글리시 억양을 못 알아들을 때, 그들도 내게 조금 미안해한다. 난 할머니들의 그런 인간미를 사랑한다. 그러다가, 몇 번을 반복해 주어도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서로 포기할 때가 있다. 그런 모양새가 지속적으로 반복될 때가 있다. 그날이 오늘이다. 섬인 듯 불현듯 외롭다.
주위에 무심한 듯 코바늘만 잡아당겨 편물의 공간을 조금씩 넓혀나갔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그 와글거림 속에서 뚱딴지같은 졸음이 사르르 쏟아졌다. 소음이 자장가로 바뀌었나. 차라리 소음이 나았다. 자장가는 나를 못살게 굴었다. 잠귀신처럼 나를 잠구덩이 속으로 밀어넣었다. 꿈속같이 몽롱해져 갔다. 그때 마침 구세주 같은 폰 알람이 울렸다. 두 시간 주차시간 알람. 핑계 삼아 주섬주섬 챙겨 나오며 할머니들한테 인사를 건넸다. 그때,
하이 홍, 반가워.
얼굴이 갸름하고 가지런한 치아가 유난히 새하얀 캐럴이 반색을 하며 나를 반긴다. 한순간에 외로움과 잠만보가 내 몸속에서 쏙 빠져나가버렸다. 그녀는 외로움과 졸음에 겨우 지탱하던 내 속내를 알아차렸을까.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는지, 여행은 잘 갔다 왔는지, 어땠는지... 친절하고 명랑한 이모님인 양 안부를 다정히 챙겼다.
때로, 불현듯 즐겁다.
두 시간 주차시간이 급하여 교실을 벗어나야 했던 지극히 짧은 순간에, 내 외로운 옷을 벗겨 즐거운 옷으로 갈아입혀주었다. 캐럴의 말 한마디로, 얼른 떠나고 싶던 교실이 더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지붕 위 말끔한 흰구름이 하얗고 가지런한 그녀의 치아를 닮았다.
블렝킷바디스의 미리암 할머니가 뜨신 토시. 양손목에 걸치도록 가슴 앞에 차고 돌려가며, 치매 환자한테 어느 동물인지 맞추게 하는 게임용으로 뜬, 깜찍 발랄한. ^^
외로움과 즐거움은 편물 양면에 붙은 생쥐와 고양이 같다. 가끔 외롭고
때로 즐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