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기억

by 예나네



바람은 섬약하다.

제 몸피보다 가벼운 것들의 끄트머리에 다가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거나 흔들어 깨우거나 드러눕힌다. 눕힌다고 다 불이익이 아니듯 일으킨다고 유익한 것만도 아니다. 떨어지면 지는 대로 누이면 눕는 대로 낮아져서 분분芬芬한 낙화 거나 녹의綠衣의 보리로 자신의 길을 만든다. 바람의 길은 돌발적이지 않으면 숭고하다.


어느 날 바람은 달빛같이 진양조로 흐르던 저 강물을 느닷없는 자진모리로써 습격했다. 장대비를 짐승처럼 몰고 와서 강물을 덮쳤다. 도적떼같이 불어난 강물은 벌겋게 혈안이 되어 공원을 습격했고 공원 바깥의 이차선 도로를 가격했다. 도로 위 산 중턱까지 올라가 입을 쩍 벌리고 산허리를 위협하였다.


어떤 개인 날, 강가의 이 공원에 와 보았다.

예상보다 공원의 외상外傷은 심했다.


예전에 바람은 꽃의 볼을 스치고 새의 볏을 쓰다듬으며, 떨어지는 잎으로 팔랑팔랑 나비를 만들던 따스한 개구쟁이였다. 강물에 뜬 청둥오리, 두루미, 블랙스완, 펠리컨 같은 새의 꽁지를 바람이 툭 친 후 줄행랑을 놓으면 물방울들이 바람을 쫓다가 바람의 손끝에서 강물 속으로 찰방 되 떨어지곤 하던, 장난기 어린 풍경이었다.


전망대는 강 언덕배기에 공원의 눈동자같이 있었다. 어른들은 강가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나 산책을 즐겼고 아이들은 생일파티와 공차기하던 공원이었다. 강변의 카페는 커피 향이 그윽했고 주인은 정이 담뿍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바람은 나직이 숨죽이고 있다. 더 이상 수선스레 불다간 강의 울음을 제지 못할까 봐, 바람도 속으로 운다. 햇빛. 바람. 강. 이들은 고장 난 기계의 부속품처럼 더 이상 한 덩어리로 있어야 할 존재감이 없어져 버렸다. 카페. 전망대. 바비큐의 터. 모든 것이 멸실되고 만 이 공허의 땅. 작가의 찢긴 원고 같은 폐허의 사슬.


햇빛은 진흙 낀 땅에서 빛바랜 종잇조각 한 장 바스락 거리며 만지작대고 있다. 강물은 장애인같이 기신기신 흐른다. 강의 일부는 급체한 배불뚝이처럼, 급물살에 떠내려 온 모래더미로 불룩하다. 그 섬에 든 오리 한 마리, 제 자식 셋을 데리고 괙괙괙괙 대책 없이 무의미한 가사만 남발하고 있다.

어떡하나. 저 강과 오리들.


도저히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풍경들 속에서 비의悲意 가득한 물비린내가 풍긴다.



그나마 공원 한복판에 키 큰 나무 한 그루, 마지막 보루처럼 살아남았다.

바람 잘 통하는 꼭대기의 녹색 우듬지를 열어, 하늘과 교신 중이니 다행이다.


그 무렵 이웃집 청년의 몸도 허탈과 허무에 들었다.

그가 소생할 가망성은 이 공원의 비보만큼이나 절망적이었다.

의사의 진단도, 부모님의 눈물과 한숨도, 이웃의 걱정 어린 마음도…, 이 공원의 바람처럼 속으로만 잦아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 공원의 강물처럼 기신기신 울음을 참지 못하였고 어머니는 그대로 무너졌다. 운전을 하던 친구는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뒷좌석에 탔던 청년은 목 위의 머리 부분이 빠졌다. 안전벨트로 압박됐던 창자가 파열되었고 갈비뼈가 나갔다. 의식은 불명이다. 목의 뼈대를 재생하기 위하여 반듯이 눕힌 자세로만 머리를 고정하고 천장만 바라보게 했다. 오랜 시간 누워 있어서 뒤통수가 헐어 진물이 나왔다.


어느 볕 좋은 날, 그 공원이 다시 그리웠다.

나도 참 무심도 했다. 근 2년 만이니.


시간은 부서지고 넘어지고 깨지더라도, 생명만 부지하고 있으면 다시 붙여주고 일으켜 세워주고 재생을 허락하는가.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도 그 공원이 본향이었나. 공원의 공간이 과거의 시간으로 불려 나와, 붙여지고 이어지고 세워지는 대수술 중이다. 심장인 카페가 부활하고, 아이들 놀이터는 동맥처럼 회전을 하고, 공원의 전망대까지 새 눈동자로 우뚝 서 있다. 아직 잔디 밭쪽은 공사 중이라 폐쇄되어 있지만, 새살 돋는 상처처럼 다시 핏기가 돈다.


어른들은 축복을 하는 듯 카페에 붐비고, 아이들은 놀이터 주인으로, 소풍 온 가족들은 전망대에 서서 풍경을 내려다본다. 강물 위에 두둥실 뜨거나 공중을 빙그르르 선회하는 새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어떤 젊은이는 강가에 내려가 물수제비를 뜬다.


강은, 잃어버린 공간을 찾기 위하여 아직은 강의 중앙에 불룩한 모래알들을 밑둥치부터 덜어, 제 물살에 싣고 강 하구로 차분히 흘러간다. 바람은 잃었던 시간들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강 언덕 위에 딱 한 송이 핀 엉겅퀴 꽃으로 다가가, 엉겅퀴 가시를 살찌우고 있다. 이 치밀한 생태계의 노고 앞에서, 절망의 끝에 있던 나의 시간과 힘듦을 꿋꿋이 헤치고 나온 이웃을 가만히 떠 올려 본다.


천운일까.

그 청년의 몸도 나사로처럼 살아났다.


사고 당시 절망의 순간은 소망의 뒷면과 맞닿아 있었고,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꼭 붙잡았다. 2년 동안 담당 간호사와 사랑을 나누며 재활치료를 성실히 하여 건장한 몸으로 회복되었고, 올 시월에 한국에 가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들의 앞날에 더욱 웅혼한 팡파르가 울리리라.


몇 년 전 브리즈번 대홍수를 의연히 견딘 키 큰 나무 한 그루는 이 공원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공원 복판에 우뚝 서서, 그때 잃어버린 나무와 꽃들… 을 추모한 후, 공원의 새 역사를 하늘에 새기고 있다. 더 깊고 단단히 내장된 바람希의 뿌리로 서서 지난 시간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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