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사는 밤하늘에선 직벽에 부딪히는 파선 같은, 새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린다. 잔잔하던 허공은 파문을 일으키고 잠들었던 이들은 불청객을 맞이하듯 깨어난다. 그것은 급정거로 끼-익 하는 자동차 소리 거나, 불이 났을 때 다급하게 쳐댔던 내 유년의 종소리를 연상케 한다.
그 밤도 나는 절박한 새의 외침으로 인해 단잠에서 깼다.
새의 울음은 오래전 내 안에 머물던 조금 먼 과거의 기억을 길어왔다.
남편은 겨울나무 꼭대기의 새둥지같이 성글은 둥지를 남겨두고 떠나갔다.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메마른 둥지는 꽁꽁 얼 듯 추웠고 흔들리다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였다. 채 못다 지은 허술한 둥지를 과수원 한복판에 오도카니 남겨놓고 그는 눈을 감았다. 깜깜한 밤에 불현듯 천적에게 잡혀 먹힌 새처럼 한 순간에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앰뷸런스 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젊은 남편은 그 소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부터 나의 내면에선 고요한 어둠을 때리는, 새 울음 같은 다급한 비명이 날마다 났었다. 무인지대를 찾아가 홀로 이 비명소리를 내야만 살아낼 수 있었고, 인파가 모인 곳에서는 그 울음을 꾹꾹 눌러 삼켜야만 밤낮의 분초를 견딜 수 있었다. 그것은 세찬 세파 속에서 긴장을 초월하려는 울음이기도 했으며, 까만 눈동자로 반짝이는 자식들의 순수를 지키려는 울음이기도 했다.
그날 밤 돌산의 바위가 굴러 내리듯이 울던 새들은, 둥지를 앗길 상황이었거나 생명을 위협당하는 위기에 있었나 보다. 허공을 찢는 어둠 속 비명은 생을 가까스로 부지하던 내 속울음과 동일했으니까.
허술했던 나의 둥지가 매정한 바람에 날아갈까, 홀로 자식들을 먹이고 살리는 경제가 바닥나진 않을까, 하는 원초적 문제에 대하여 얼마나 전전긍긍하였던가. 어두운 현실의 비명이 조막만 한 내 심장에 어찌나 축축하게 달라붙어 있었던가.
한쪽이 빈 둥지 속에서도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어린아이들의 밥을 챙겨주어야 했고, 도시락을 가방에 넣어 주어야 했으며, 이웃과 아침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재롱부리는 아이들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보여야만 했다.
가장이 떠나 냉기로 가득해진 공허의 시간은 공부로 메웠다. 빛은 그렇게 나를 이끌어 갔다. 유아교육학과라는 학습의 길을 선택하게 했고, 만 육천 평의 과수원 일과 어린 세 자식들의 돌봄으로 동분서주하도록 했다. 뼈저린 현재를 미래의 꿈으로 가리게 하였다. 대학원은 국문과를 택하였다.
몇 년 전, 우리 가족이 호주에 온 이유를 ‘엄밀히’ 따져보면 모호하다. 나 자신의 생의 여정을 넓히려는 의도였는지 자식들의 교육만을 위한 길이었는지, 확연하지 않은 까닭으로 아이들 셋과 함께 호주에 날아왔으니. 그래 나와 아이들 모두의 미래를 위한 여정이었다. 호주에서 나는 세 아이들이 잘 먹던 김치를 열심히 담았고 호박죽을 손수 쑤었다. 돌아보면, 분주하던 그때가 행복으로 넘치던 시간이었다.
아침이 되자 새들은 빛을 그러안아 생명으로 잉태된 나뭇가지 위를 재잘거리고 있었다. 어젯밤 비명을 지르며 미망에 갇혀있던 새는 간 곳이 없었다. 가족 중 한 명이 천적에게 잡혀 먹히고 불현듯 가족의 구조가 와해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어젯밤의 절규하던 어둠은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빛은 밝은 대낮을 불러왔다. 그 빛을 등지고 새들은 내 뒤뜰 잔디밭을 거닐고 나뭇가지를 한가로이 오가며 재잘재잘, 놀기도 하였다. 부리와 부리로 먹이를 건네주는 다정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삶은 슬픔과 불안을 빛 안으로 숨기고 기쁨과 평화로 가장하는지도 모른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간헐적인 새 울음은, 우리 마음 안에 본질적으로 박혀있는 생의 가장 보편적인 아픈 모양새이며, 이 굴곡진 틈새를 견디는 시간 속에는 보석 같은 생이 숨어 있는 것이다.
절박한 생의 길은 나뿐 아니라 새의 울음 속에도 있고, 깜깜한 밤의 고요 속에도 피울음의 파장으로 파묻혀 있는 것을. 우리 모두의 삶 속에 험난한 세상을 견디다 터져 나오는 속울음이 들어있고, 그 힘듦을 건너기 위한 내적 몸부림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서려 있는 것을. 아무리 화려한 겉모습이라도, 본디의 삶은 외롭고 고독하고 아파하는 것임을. 자신과의 긴, 긴 싸움인 것을.
이곳 호주의 밤하늘에서 가끔 들리는 새의 울음은 과거의 내 내면의 소리면서, 나와 유사한 운명에 처한 누군가의 신음이기도 하다.
그 밤, 가족의 구조가 와해되었을지도 모르는 그 비명을 지른 새의 가족에게 춥지 않은 미래가 들기를 소망해본다. 어느 날은 기쁨이 자라다 시들기도 할 것이며, 또다시 평화가 피어나는 생명체 같은 삶이 우리 생의 여정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