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 않아 눈길이 갔다.
꽃잎 하르르 지지 않았지만 분명, 낙화였다. 꽃의 세계에선 부조
리한 이 꽃을, 꽃이라 부르기가 민망했다. 뭇 꽃들은 잎이 돋기 전
에 떠나야 할 시간을 알고, 때 되면 꽃잎 하르르하르르 쏟지 않던
가.
하지만 콩고물 같은 것을 아끼듯 떨어내는 뒤뜰 망고 꽃은, 잎
이 돋았는데도 고요했다. 꽃은 잎의 공간에서 잎들과 더불어 지내
다 시나브로 낙화하였다. 그 터에 오롱조롱 열매 맺더니, 4분 음표
같이 생긴 열매를 한 꼭지에 한 알씩 남기고 다 떨어트렸다.
작은 음표 하나로 인해 소리의 맛이 생성되는 게 믿기지 않듯
이, 이 작은 열매 또한 숙성된 망고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
도 슬며시 망고의 단맛을 기대했을까. 창밖으로 망고나무를 지켜
보는 두어 달의 기간이 꽤 지루하게 느껴졌다.
한때, 달달한 혀의 감촉뿐 아니라 안 속까지 동질의 정교한 질감
으로 스며드는 망고의 신성한 미감에 빠져든 적이 있다. 별빛을
마신 듯 노랗게 물 든 망고의 속 향이 입안을 달콤하게 감싸는 맛
은, 어떤 과일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 나는 아침마다 한 알
에 3불짜리 비싼 망고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꺼내 먹곤 했었다.
망고의 볼이 발갛게 물들고 오동통 살이 오르는 모습은 달콤함
을 꿈꾸는 추임새이다. 그때부터 망고의 속살은 명주실만큼이나
결 고운 노랑으로 익어가는 게다.
어느 날부터인가. 망고나무에서 포섬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냉장고에 든 음식 꺼내 먹듯이 밤마다 포섬은 망고를 갉아
먹은 흔적을 남겼다. 박쥐도 그것을 눈치채고 포섬과 밥그릇도
툼을 하며 푸드덕푸드덕 저녁 날개를 쳐댔다. 칠면조같이 생긴 부
쉬터키란 놈은 나무 밑에서 낙과가 되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으면
제 새끼들까지 거느리고 나와 가든파티라도 하는 양, 빙 둘러서서
망고의 살을 발라 먹곤 했다. 동물들도 나처럼 망고를 이토록 즐
겨 먹는다는 사실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동물들이 다 해치우기 전에 사다리에 올라가 망고를 하나
씩 따 담았다. 아까웠지만, 이웃에 몇 알씩 나누어 주고도 아직
한 광주리 가득 담겨 있으니 올해 우리 집 망고 농사는 대풍이다.
나무가 높아 스무 알 정도는 따지 못했다. 고향의 감나무 꼭대기
에 까치밥 남기듯 포섬이나 박쥐, 부쉬 터키나 새들의 양식이 되길
바라며 가만히 남겨두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이들은 포악 무도하게 망고의 살점을 뜯어
먹었다. 하루 저녁에 못다 먹은 망고는 반쪽이 파 먹힌 상태로 허
공에 매달려있어야 했고, 이튿날은 나머지 반쪽마저 잔인하게 쪼
아 먹혔다. 앙상하게 씨만 남은 망고는 공중을 아프게 흔들었다.
망고의 헐벗은 몰골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자꾸만 눈에 어
늘 걸렸다. 반 주검의 상태로 나무 끝에 매달려 비감悲感의 음을
탄주 하는 망고를 보면서, 사람의 속도 이렇게 무참히 무너질 때가
있음을 느꼈다.
절벽같이 무모한 세상으로, 오늘 밤도 망고는 중력
을 못 견딘 채 땅바닥으로 툭 떨어져 물컹한 살덩이를 뭉그러뜨릴
것이다. 그리고 부쉬 터키는 쪼르르 달려와 남은 살들을 또 콕콕
쪼아 먹을 것이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망고나무 앞에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소멸되는 현상 속에서도 망고는 민감한 색
감과 달콤한 맛을 꾸준하게 익혀내고만 있었다. 제 살 먹히고 쪼
이는 현실에 대해서는 잊어버린 것 같았다. 다만, 유형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향을 고여내는 숙성 미를 점점 농짙게 표현하고
있었다. 제 몸이 박살 나면서까지, 누군가에게 더 달콤한 향을 내
터주는 것. 그것만이 망고의 치열한 삶의 목표처럼 보였다.
황량한 것이 사막의 삶이라면 초원의 삶은 푸름이듯, 최선의 향
기롭고 단 맛을 누군가의 목구멍으로 넣어 주는 것. 그것이 망고
의 생이었다.
망고의 생의 계절은 절벽으로의 낙과와 갉아 먹힘, 쪼아
먹힘이 절정이었던 거다. 그 달콤하고 향기로운 먹힘을 위하여, 한
해의 서사를 잔인하도록 야무지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주 충일
한 망고의 계절을 통과하고 있었던 거다.
망고나무는 이제, 한 계절의 연주를 마치고 연미복을 벗었다.
열매를 떠나보낸 후, 옷 갈아입은 망고 잎사귀들은 하늘에 차분
히 들고, 햇살은 흰 빛으로 잎들을 감싸 안는다. 마실 온 바람은
잎새 끝에 잔잔히 머물다 ‘온쉼표’ 하나 가지에 걸어 주고 살며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