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날자, 날자

by 예나네

아내와 두 칸으로 나누어진 방을 쓰고 있다.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이불속에서 혼자 사색하지만 적극적으로 궁리하는 법은 없다. 사람 사는 세상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아내의 감시 속에서 사육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허락도 없이 외출하고 돌아온 주인공에게 아내의 눈초리는 분노에 차 있다.「날개」의 주인공은 자신을 인위적으로 위조하고 있다. 아내의 매음 공간을 침범할 수 없고 아내가 쳐놓은 자정이란 시간에 감금되어있다. 그러다 정오의 사이렌은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이렌이 울자 속으로 억압되어있던 주인공의 자의식은 하나의 외침으로 터져 나온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개의 주인공만 구속의 틀에 갇혀 사는 게 아니다. 우리 삶 속에 구속이 한두 가지더냐. 인간관계, 비즈니스, 학업이라는, 잡히기만 하면 놓아주지 않는 구속의 굴레가 얼마나 많이 있더냐.


날자. 날자.

한 번쯤은 동경했던 단어. 구속의 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데선 감미로운 문구.

그러나, 막상 정오의 사이렌이 울리면 새장 속같이 갑갑한 삶일지라도, 다른 곳으로 날아가길 주저하게 되는 좁아터진 우리의 삶. 구속당하길 거부하던 자의식이면서도 떨치기 두려워하고 날기를 망설이다 그 자리에 주저앉곤 하는, 현실에 성실하고 이웃에 인정 어린 뭇 인생.


삶의 구속이 심한 날, 겨드랑이에 날개는 더 많이 돋지만, 만져보면 내 겨드랑이에 날개는 없다. 하루도 모자라 몇 날 며칠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끙끙 앓으며 앉아있었는데 원고지가 채워지지 않는 회색의 현실이라도, 하던 일에 늘 손발이 닿아있어야 안심을 한다. 욕구는 욕구로 끝나더라도 늘 같은 삶의 경계 안에서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뱅뱅, 나의 삶을 돌린다. 덕분에 시야는 좁다. 능력의 한계도 절감한다. 그런 일상이 불안하기 때문에 무언가 하나라도 꼭 잡고 있어야만 한다. 중독이 된다. 글씨 중독증, 운동중독증, 쇼핑중독증. 그러면서도 한 번쯤 날아보고 싶은 욕구는 기어코 떨쳐버리지 않는다. 그것을 여운처럼 지니고 산다. 현실의 시공을 훌훌 털어 내고 싶은 염원을.


『구운몽』에서 성진이 복숭아꽃으로 구슬을 만들어 주자 팔선녀들은 그것을 손에 쥐고 성진을 향해 찬연히 웃으며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팔선녀의 여운은 성진의 마음을 가득 메우게 된다. 성진은 팔선녀들을 떠올리며 정신이 자못 황홀해진다. 공맹孔孟을 읽고 백팔염주를 굴리는 데 적막감을 느낀다. 이를 눈치챈 스승 육관 대사의 감시가 소홀할 리 없다. 술에 취하고 미색을 그리워하며 불가의 적막함을 싫어한 죄로 육관 대사는 수제자 성진을 인간세상으로 내쫓는다.

꿈꾸는 자는 성진뿐이 아니다. 날기가 안 되니 성진 - 그대도 꿈을 꾸고 나도 꿈을 꾼다. 자면서도 꿈을 꾸고 깨어서도 날개를 다는 꿈을 꾼다.


2002년이던가. 그해 겨울이 내겐 깜깜절벽이었다. 서너 달 동안을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시커먼 가방 하나 둘러메고 독서실에 들어가면, 새벽 두 시까지 그 자리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아둔한 내게 학위논문의 끝은 안 보였다. 끝점을 보려 하면 더욱더 절망의 숨통이 조여 왔다.

도달하기 요원한, 올려다보기도 숨 막히는, 높고 높은 그 끝점.

인간은 깨어 있을 때도 꿈을 꾼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독서실에 틀어박혀 있다고 해서 감정도 돌덩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속에서 뭔가 꿈틀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다만 바깥으로 삐져나오려는 적체된 속앓이를 자꾸만 안으로 꾹꾹 되넘기고 있었다. 무엇인지도 모를 그 무엇이, 내 속에서 꿈틀대며 입안을 까칠하게 했고 온몸을 비틀리게 했다.


4층 독서실에 틀어박혀 있던 어느 겨울밤.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맨 아래층까지 내려갔다. 상가가 즐비한 그곳엔 노래방도 있었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한 시간치 돈을 지불하고, 혼자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구슬프게 불렀다. 그러다 점점 감정이 고조되었다. 나중에는 목이 터져라 불렀다. 노래를 하는 내 흥에 취하여 행복하게 불렀다.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부르면서 내 안의 그대에게 하늘이 되고 노을이 되고 비가 되었고, ‘민들레 홀씨’가 되어 내 속의 그대를 향해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한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유익종, 유제하…를 나 혼자서 다 불렀다. 눈까지 지그시 감고 내 노래에 흠뻑 취해 있었다.


스승의 내침이 아니더라도 성진은 불가의 법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았을 거다. 공맹孔孟과 백팔염주의 대립 관계인 여색에 미迷할 법도 했을 거다. 불손하게 달라붙는 감성을 누르려고 이를 악 물면 물수록 성진의 이성은 더욱더 자신을 괴롭혔으리라. 그런 성진의 번뇌는 꿈이라는 캐릭터로 나타났다. 꿈속에서 8명의 여인을 만나 정을 나누었다. 빛을 좇는 사람에게 제2의 언어라고 하는 꿈속에서, 성진은 화려한 인생을 맛보았다. 꿈속에서 성진은 날개를 달고 허공을 마음껏 누비며 날아다녔다.

꿈속에서 소유少遊로 태어난 성진은 낙양에서 기생 계섬월과 인연을 맺고 장안에서는 여자로 변장을 하여 거문고 연주를 하면서 당대 최고의 규수인 정경패의 미모를 몰래 살펴본다. … 그네들과 인연을 맺은 소유는 2처 6첩을 거느린 승상이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 노모를 모시고 잔치를 연 후 처첩들과 행복한 나날에 취해있게 된다.

돌 지팡이로 난간을 두 번 쳐서 꿈속의 성진을 일깨운 스승이 묻는다.

“성진아, 인간세상 부귀영화를 겪으니 과연 어떠하더뇨?”하고. 그러자 성진은 몽롱한 기분을 추스르고 대답한다. “… 사부께서 자비로우시어 하룻밤 꿈으로 제자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니 사부의 은혜는 천만 겁이라도 갚기 어렵소이다”라고.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노랫가락의 흥에 취해 있던 나는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불청객의 남자에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각覺. 정신이 번쩍 하였다. 마치 호접몽처럼, 내가 꿈을 꾸는지 꿈이 나를 꾸는지 한동안 몽롱했다.


‘팔선녀에 미迷하고 부귀공명의 환幻을 통과한 후 스승 앞에서 각覺’하였던 성진. 그리고 소유. 소유少遊를 인터넷에 클릭해보니 ‘짧은 시간 놀다 가는 것’이라 뜬다. ‘본성’이란 의미의 성진性眞에게 얼마나 이상적 이름인가.

소유少遊 - 그 이름을 어느새 내가 흠모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 놀다 가는 것. 이 얼마나 풍류에 가득 찬 이름이더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란 시구가 소유에게 지독한 패러독스라고 해석할 이유가 있더냐. 그처럼 산 날이 나에게도 있었더냐. 이미 날개를 단 소유, 그에게 이상의 ‘날개’가 무슨 소용 있더냐.


그날, 내 꽉 막힌 심리의 자장은 노래와 비명소리로 분출되어 씻겨 내려갔는지, 다음날부터 독서실에 다시 앉아 차분히 논문 작성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날개는 그렇게 한 번씩 시시한 죽지나마 쳤다가 다시 거두곤 한다. 내가 있어 나의 날개도 돋는다.


“성진이 연화 도장 대중을 거느려 크게 교화를 베푸니 신선과 용신과 사람과 귀신이 모두 존경하여 받들기를 육관 대사와 같이 하더라. 여덟 비구니가 성진을 스승으로 섬겨 보살의 큰 도를 얻어 아홉 사람이 함께 극락세계로 가니라.”


날자. 날자. 날자.
날아보자.

나답게. 그대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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