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化 花 和

by 예나네

* 무엇이 된化다는 건,

하동골 벚꽃으로 성이 차지 않았다. 호암미술관 앞산에 흐드러질 산벚꽃 무리와 미술관 초입을 장식하는 벚꽃터널을 더 보고 싶었다. 미술관 앞 호숫가에서 물결처럼 번지는 음악의 선율에, 더 곡진한 예술미로 피어오를 꽃을 예의 주시하고 싶었다. 그곳의 벚나무가 벚꽃나무로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전 아홉 시 반. 벚꽃이 아직 한 송이도 피지 않았다. 날씨는 청명하다.


미술관 초입에서 차를 멈추고 차창을 열어 벚나무를 본다. 차 안에서 올려다 보이는 먼발치의 벚꽃 봉오리는 파란 하늘에 널린 수수 알 같다. 차에서 내려 벚나무 터널 속으로 한 발 한 발 들여놓으며 봉오리를 찬찬히 살펴본다. 분홍 꽃망울이 터질 듯 말 듯, 채송화 씨만 한 눈을 빠끔 내밀고 있다.

호수 건너 산벚꽃나무로 덮인 산색도 아직은 검보랏빛이다.


호숫가 돌 벤치에 앉아 내 속으로 빠져있는데, 왁자한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버스 십여 대에서 내린 아이들이 떼로 몰려오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인데 수학여행을 왔다고 한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있는 아이들이 피지 않은 꽃망울 같다. 사람 꽃망울. 아이들을 꽃송이 보듯 한참 보다니 그 속에서 수만의 설렘이 감지된다.


아이들 시간 속으로 내가 들어가 본다. 사춘기라 불리는 저 나이 때 나는 설레기보다 고뇌와 번민으로 휩싸여 있었다. 짝사랑으로 고민하고,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 시달리고, 신체변화에도 드러내지 못할 수치심을 동반하고 있었다. 많은 걸 체념하기도 아까운 시기지만 누군가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상담하기도 민망하여 속에서 뜨겁게 들끓고만 있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나를 예쁜 꽃봉오리로만 보았을 거다. 설렜던 건 내가 아니라 나를 보는 어른이었을 거다. 금방 터지려는 꽃망울보다 그들을 보고 있는 내가 더 설레고 있는 거다.


점심을 먹은 아이들이 미술관으로 가버리자 그 자리가 휑하다. 햇살은 따사롭다.

산은 어느새 연하디 연한 분홍빛 수묵으로 번지고 있다. 내가 나에게 빠져있는 동안, 산은 흐르는 시간을 좇아가며 봄물을 들이느라 수고한 흔적이다. 카타르시스인가. 산의 고뇌가 내 실핏줄로 번진다. 산새들도 숨죽이며 벚꽃 피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으리라. 지금 벚꽃가지들은, 꽃이 되기 위해 몸살을 앓고 있으리라.


보라에서 바로 분홍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복사꽃이 벚꽃이 되는 게 아니라,

미세하게 산색을 움직이는 벚꽃나무
- 시나브로 버찌가 될化 꽃花.


* 꽃잎花을 열며,

삼일만에 다시 왔다. 벚나무는 가지마다 20% 정도의 꽃을 팝콘처럼 틔워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가지에서는 봉오리가 열리고 있을 거다. 미술관 분수대도 폭죽처럼 터지면서, 산고를 앓고 있는 나무의 기운을 돋워 준다. 따스한 햇살과 살살한 바람은 꽃송이 송이 속으로 종소리처럼 골고루 번지며 꽃망울을 데우고 있다.

꽃망울은,
조금조금 꽃花이
되어化
간다.


* 어울릴和 수 있다는 거.

별의 배경이 어둠이라면 꽃의 배경은 비 오는 날이다.

비 오는 날 벚꽃은 더 환하다. 찡그린 나만 보고 웃는 게 아니다. 끄무레한 날씨를 향해 도전하듯 웃고 있다. 꽃잎 위에다 새가 똥을 누고 가더라도 꽃은 웃을 것이다. 벚꽃은 웃는 게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는가. 왜 속에서 옥은 맘을 바깥으로 명쾌히 펼치지 못하는가. 아직 웃지 못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시원스레 성내지도 못하는가. 우중충한 날씨에 개의치 않고 빛없는 등불이 되어 온 산과 미술관 초입을 환하게 밝히는 벚꽃 앞에서, 왜 나는 성난 모양새로 한참 동안 서 있을 수밖에 없는가. 너무 밝은 꽃 앞이어서 기가 꺾인다고 변명할 수 있는가.

그러나.


화 - 꽃은 꽃이라서 웃지만 나는 사람이라서 화를 내기도 한다. 꽃은 웃는 게 전부지만 나는 사람이기에 웃기도 울기도 성내기도 하는 것이다. 화낼 때 화내지 않고 웃는다면 그는 진정한 사람이 아니다. 심장 한쪽이 마비된 사람이다. 그 자가 사람이라면 몸서리치도록 매몰찬 사람이다. 인간미 어린 사람은 화낼 때 화내고 웃을 때 웃는 사람이다.

꽃은 할 수 있는 게 웃는 것밖에 없기에, 늘 웃지 않는가.


꽃이 성낼 수 없는 건 일종의 장애가 아닌가.
자신의 장애를 흐드러지게 드러내기에 아름답다 하지 않는가.
장애뿐 아니라 농염함까지도 당당하게 표출하기에,
어여쁜 꽃이 아닌가.


우산을 쓰고 미술관 앞 정원을 거닐어본다. 비바람을 맞는 꽃잎이 한들한들 나비 날개 짓을 한다. 빗물은 꽃이 머금을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는 아래로 톡톡 떨어지면서 흙 위에 게 집 같은 발자국을 남긴다. 땅에 떨어진 이 빗물에도 분홍의 꽃향이 스며있으리라.


산벚꽃나무를 병풍처럼 뒤로 한 미술관 옆 담장 위에선 공작새 한 마리가 꽃산을 주시하며 마치 박제된 새처럼 꼼짝 않고 서 있다. 내가 지켜보는 반시 간 동안 귀부인의 자태로 고개만 조금 움직일 뿐이다. 비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먼 산을 주시하고 서 있는 공작의 차분한 성정이 고적하다.

호숫가에선 백로 한 마리가 꽃산 쪽으로 날기 시작한다. 사선으로 내리는 빗줄기 속에 또 하나의 빗금을 그으며 공중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백로의 유연한 몸짓이, 한 줄의 시구다.


자연 속 자연들은 이처럼 유려하게 어울리고 있는데 난 왜, 그러지 못하는가. 자연 앞에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가. 춥고 초라하게 서 있는가. 옷깃을 여미며 청바지가 비에 젖는다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가. 바람을 막으며 우산의 방향 바꾸기에 애끓는가.

스스로 잘 어울리는 자연을 보며 자연에 동화되지 못한 나를 자책하면서도 끝내 어울리지 못하고 만 나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꽃봉오리는 이제
온전한 꽃이 되었다化,
그 꽃花을 본 나는,
무엇과 어울릴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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