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미 마음공부

by 예나네

올 유월초부터 워킹맘으로 돌아간 딸의 집에서
첫 외손주 재영이를 돌본 지 두어 달 훌쩍 지나가고 있다. 아니, 재영이랑 외할미랑 같이 알콩달콩 놀아온 시간들의 조각보가 할미 맘 속에서 아롱이 다롱이로 짜여지고 있다.


남들은 손주를 '봐준다고' 하는데,
재영이와 출가한 딸,
그리고 가족이 된 사위와 함께
재영이를 중심으로 생활하게 된
이 시간, 이 할미가 '누리는'
또 하나의 스페셜 라이프다.
때로 몸이 고달프고 맘이 고단할 때도 있는데, 그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데 꼭 들어가는
생의 양념이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아직 혼자 앉지 못하던 재영이를 할미가 만났는데, 요즘엔 카페에 비치된 하이 체어에다 따로 앉혀서 이유식을 한 입 한 입 똑똑 떠먹일 수 있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만 외손주가 있는 듯 자랑하고 싶고 마음의 뜨락에 소복이 꽃봉오리가 맺힌다.

시간은 지난 시간들을 희미하게 지우며 지금의 생경하고 생생한 시간들로 채워 마음속에다 또 하나의 블럭을 쌓는다.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던 시간이 햇빛처럼 따스하고 하얗고 동그란 모양새로 내 옆에 와 있다.




이곳 시드니에서 국내선을 두 번 타야 닿는 나의 집에서 엄마 밥을 가끔 그릴 둘째 딸과, 뜰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꽃나무들이 때때로 마음의 기침처럼 쿨럭쿨럭 걸리는 별개의 이슈이기도 하다. 그곳을 향한 그리움이 앙금처럼 마음 밑에 잔잔히 가라앉을 때도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하지만 온전히 호락호락하게 완성되는 삶은 누구에게도 허락지 않을 터, 나에게 찾아온 색다른 이 시간,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아기를 안듯이 내 품에 꼭 껴안는다.
그래 재영이와 외할미가 놀면서 그려내는 고 색 고운 우리만의 고유 색을, 하루하루의 일상에다 갈아 입힌다.

'이쁜 색이 되거라!'하고.


어느 오후 베란다에서, 할미는 빨래를 툭툭 털어 널고, 재영인 까르르륵 웃어제키고, 키큰 나뭇가지에서 새들은 노래하고.
재영인 요즘 거울 속의 재영이와 친구인 듯 아주 친밀하고 재밌게 잘 논다.

아기로 태어나 열 살이 될 때까지 받은 사랑, 고 이쁜 사랑은 우리 감성의 두둑한 한 밑천이다. 즉, 부모님이나 뭇 어른들에게 받아 온 속살 같이 고운 사랑의 씨앗, 그것은 겨자씨처럼 작으나 나무처럼 울창하게 자라서 우리 일생을 따끈하고 끈끈하며 풍성하게 작동시킨다는 걸, 나는 믿는다.

어릴 적 고 작은 가슴에 따스히 지펴진 훈훈한 순결의 사랑, 누에고치에서 갓 뽑아낸 명주실 같은 고귀한 사랑의 끈기로, 우린 평생을 부~자로 산다는.



아기 때 받은 그 맑은 사랑을,
일생동안 넉넉히 퍼주며 살 수 있다는 게 낭설이 아니라는 걸, 이 나이만큼 살아오면서 체험을 통해 느껴왔고,
그것을 신뢰하는 쪽이다.

"아기에게 나누는 사랑이
그만큼 중하다는 걸."


아기를 포근히 안아주고 업어주며 스킨십을 자주 해주는 일도, 아기와 양육자 사이에 애착형성이 잘 되고 아기가 보다 안정된 마음이 된다니, 그것 또한 좋은 사랑의 표현이란다. 그러고보면 어른이 아기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사랑의 질감은 그리 어렵거나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저 아기와 즐겁게 잘 놀아주기만 해도 절반은 성공할 수 있는 거다.


그럼에도, 내 아이들을 키운 지 하도 오래돼서, 뭇 아기들의 새하얀 마음 무늬를 가물가물 잊고 있었다. 재영이가 점점 자라면서, 만지고 기고 앉고 짚고 일어서기 시작하고, 울음소리와 표정으로 자아를 달리 표현하게 되니, 할미 내면에서 육아에 대한 책임과 염려의 파동이 파닥파닥 일기 시작했다. 아기와 '즐겁게 놀아주기?'에 할미 맘은 물음표가 생겼다.

할미의 맹목적인 사랑만으론 왠지
2% 부족하지 않을지.
과연 내가 아기 마음을 제대로 살피고 있는지.

행여 딸과 사위한테 심적 불편을 주는 건 아닌지. 또, 외할미가 진정 really, 모던한 할미가 될 수 있을지. - 스스로에게 질문 해 보았다.

이유식을 먹고나면 재영인 가끔 명상가처럼 고요해진다.이렇게 한참을 그저 바라보다가 할미는씻긴다.ㅎ


"마음으로 봐야
사물의 진짜 모습이 보여.

정말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 『어린 왕자』


그래,
아기 마음 전문가의
속 깊은 안목을 빌리기로 했다.
'정말로 소중한 진짜'를
우리 아기에게 마음의 선물로
전해주고싶었다.


명색이 '외할미'라는 직함을 받았는데, 속까지 마냥 아기처럼 놀기만 하는 할미가 되면 뭔가 공허할 것 같았다. 소위 날라리 할미? ㅋ
그래 책을 통해 아기들의 마음을 "거듭 읽고"(할미 기억력이 부족하니까) 객관적으로 아기의 마음을 알아보기로 했다. 울고 웃는 아기의 표정에서 아기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는 할미는 아기에게 얼마나 매력적이며 이상적이고 호의적인가. ㅎ

아기랑 놀다가 할미 속에 저축해둔 마음 지식을 적절한 때에 인출해서 아기의 감정에 센스 있게 반응하게 되면, 아기도 행복할 테고, 아기가 방긋방긋 웃어주니 이 할미에게도 엔도르핀이 팡팡 솟아나니 신명나는 윈윈 현상이 아니던가.^^


재영에미가 출근한 후,
까꿍까꿍, 까르르륵, 외할미랑 외손주랑 마음 깊~이 친밀감을 발휘하여 즐겁게
놀 때, 우리 아기 감성 얼마나
더 풍요로운
마음 부~자가 되겠는가.



그러니 얼마큼 사랑의 너비를 어떤 모양으로 아기와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좀 더 정밀하고 정교하고 정직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할미도. ^^


아기에 대한 맘속 지혜나 지식도 없이 무작정 물리적으로 넘치도록 주기만 하는
올드한 할미 티는 확 벗어버리고,
사랑의 수위를 적기에 적절하게 조절하는
모던한 할미가 되기 위하여,
외할미 맘공부를 자청했다.

우리 재영이의 울음과 표정과 몸짓을 이 할미가 느끼고 아기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울 아기 원하는 바를 100%는 못 되어도 웬만큼은 캐치하여 울 아기에게 신뢰감을 푸욱~ 안겨주는 외할미가 되도록.
울 아기의 진심을 고심해 볼, 흥미롭고 즐거운 비명 같은 새로운 놀이 하나 생겼다.
그 이름은 바로바로 '외할미의 맘공부'! ㅋ




《아기 마음공부》라는 책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있는 시간의 '양'과 '질'을 모두 충족시키기 어렵다면 '질'에 중점을 두자. '오래 같이 있는 것'보다, 주어진 시간 동안 '얼마나 친밀하게' 지내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 이는 아무리 비싼 장난감을 사주고, 좋은 옷을 입히고, 맛있는 걸 먹여도, 마음 안에 달달하고 보드라운 홍시 같은 사랑의 결로 꽉 차 있지 않으면 아기는 결핍으로 칭얼대고, 부모는 아기 돌봄에 힘겨워지며, 나아가 가정생활까지도 원만치 못하게 된다는 다른 이름이리라. 그러니 맘공부를 하여 아기맘을 알아줄 때, 아기와 속내가 서로 확 트여서 즐겁게 잘 놀 수 있다는 말이리라.


재영아, 할미는
너랑 놀 시간 넉넉~~하다.
우리 같이 놀자꾸나!

즐겁고 여유롭게.




한 밤중인 지금,
쌔근쌔근 잠들었을
재영이의 비디오를 켜서
재영이를 본다.

뒤로만 몸을 빼던 재영이가
어느 날 문득,
목표물을 향해
앞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던 날처럼,
재영이의 사진은 백번을 돌려봐도,
할미에겐 매번 새롭다.


재영아,
할미랑 재밌게 놀며
마음 부~자 되어서
그 사랑 이 세상에
넉넉히 퍼주면서 살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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