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갑자기 잘 지내려고 노력을 한다.
신혼 초에 내 부탁으로 꼭 하던 출근뽀뽀를 다시 하고
출근했다는 연락을 남긴다.
내게 말도 걸고 장난도 친다.
그럼에도 난 오늘 아침부터 울적하다.
몸은 너무 힘들고 정신은 피폐하다.
아무래도 아이 둘을 혼자 데리고 자는 게
많이 힘에 부치는 것 같다.
자다가 울며 엄마를 찾는 첫째 때문에
남편에게 넷이 같이 한번 자보자고 했다가
싸움이 이렇게나 커진거여서
그냥 내가 다 데리고 자기 시작했었다.
잠도 잠인데 신경을 계속 써야 하니
자도 자는 게 아니었다.
남편은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어쩐 일로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신경 써주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조금 기대했던 것 같다.
갑자기 첫째 아이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열이 난단다.
하. 갑자기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프다.
도우미 아주머니께 말씀드리고
첫째를 하원시키고 병원으로 간다.
가는 동안 두통이 더 심해지고
남편에 대한 원망이 마구마구 올라온다.
이런 걸 어떻게 나보고 다 짊어지라는 거지 싶어
화가 나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
그때 울컥, 팬티에 뭔가 쏟아진다.
뭐지 싶었지만 확인할 시간도 없다.
병원에서는 특별한 증상은 없다고 한다.
해열제 먹고도 열이 안 떨어지면
내일 독감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집에 아이 둘과 나 이렇게 셋이 있게 됐다.
아픈 아이 둘을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오늘따라 견딜 수 없게 너무 무겁다.
이제야 화장실에 가보니
팬티가 피범벅이다.
출산하고 첫 생리이다. 하필 이런 날.
팬티를 갈아입지도 못하고 그 위에 생리대를 찬다.
남편이 퇴근하고 왔다.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알고 어색하게 나부터 챙긴다.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거다.
나는 왜 이러지 싶어 어색하면서도 싫진 않다.
아이들을 겨우겨우 재우고
님편에게 쌓아두었던 것들을 투덜투덜 말했다.
나 둘 데리고 자는 거 너무 힘들다고.
넷이 자보자고 한 게 그렇게 잘못된 거였냐고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고.
남편은 처음에는 받아주는 척 넘어갔다.
미안하지 않으면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말을 돌려 그냥 좋게 넘어가려고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난 그게 안 됐다.
넷이 자보자고 한 거에 내가 너무 발끈했다고
그럴 일이 아니었는데 미안하다고
이 말을 듣고 싶었다.
제발 잘못한 거를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주길 바랐다.
즐겨보는 이혼숙려캠프에서
암에 걸린 와이프에게
홧김에 나가 뒤지라고 말했던 남편이 있었다.
그 얘기를 꺼내면서 나한테도 그런 거라고 말했다.
내 말에 남편은
꼭 그렇게 절벽까지 밀어붙여야겠냐며
또 표정이 차게 식고 입을 닫았다.
화가 난 거다.
순간 ‘아 이 사람 나를 정신병자로 보지.
그래서 이렇게 받아주는 척했던 거구나.‘하며
나도 입을 닫는다.
다시 냉전이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고
출근 잘하라는 인사도 뽀뽀도 연락도 다시 없어졌다.
맞다.
이 사람은 이렇게 금방 줬다 뺐다 하는 사람이었지.
나는 왜 남편이 잘못을 인정하는 거에
이리도 집착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가, 내가 생각하는
‘정상’의 범주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이 결혼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앞으로 안전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남편은 내게 미안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자기를 힘들게 했다고 생각한다.
자기는 육아며 집안일이며 잘하는데
내가 자기를 노예처럼 더 부려먹으려고 한다고,
가장으로서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기대하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그걸 또 조절 못해 드러내고 있다.
이게 다 생리 때문이다.
그놈의 생리 때문에 진짜 나 지금 정신병자 같다.
점점 산후우울이 심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