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는 50대의 마음 기록.
한 해의 끝에 서면 마음이 먼저 분주해진다.
달력은 몇 장 남지 않았는데, 나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끝내지 못한 약속들, 미뤄 둔 말들,
언젠가는 꼭 해야지 하며 남겨 둔 일들이
연말이 되면 조용히 고개를 든다.
마치 “이제는 돌아봐도 되지 않겠느냐”라고 묻는 것처럼.
50대가 되니 시간은 분명히 다른 속도로 흐른다.
젊을 때는 한 해가 길었고,
기다림에도 여백이 있었는데
이제는 계절이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지나간다.
봄이 왔나 싶으면 여름이었고,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기도 전에 가을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또 연말이다.
‘아직’이라는 말보다
‘벌써’라는 말이 먼저 입에 붙는 나이가 되었다.
해야 할 일들은 줄지 않는데
몸은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마음은 늘 앞서 가지만
현실은 속도를 조절하라고 말한다.
이쯤 되니 목표도 조금 달라진다.
무언가를 더 이루는 것보다
지켜내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가족의 안부를 묻는 일,
아프지 않게 하루를 마치는 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는 일.
이제는 그런 것들이
한 해의 성과가 된다.
어느새 나는
아이의 하루를 묻는 사람이 되었고,
부모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는 나만 잘 살아도 될 것 같았는데
지금은 내가 괜찮아야
주변도 안심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가족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르고,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까 봐
가끔은 마음이 먼저 늙는다.
그래도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누군가에게는 미뤄 둔 안부를 전해야 하고,
나 자신에게는 조금 더 다정해져야 한다.
젊은 날처럼 앞만 보고 달리지는 못하지만
넘어지지 않도록 발걸음을 살피며
걷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속도가 느려졌다는 사실을
이제는 실패가 아니라
삶이 가르쳐준 방식이라 여기려 한다.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늘 아쉽다.
잘한 일보다 못한 일이 더 또렷하게 떠오르고,
놓쳐버린 순간들이 유난히 크게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온 나를
이제는 조금 인정해 주기로 한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도망치지 않고 살아냈다고.
빠르게 달려온 50대의 시간 속에서도
나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속도는 줄었을지 몰라도
방향만은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건
아직 삶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고,
아직 건네야 할 마음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나는 조용히 한 해를 보낸다.
벌써 지나온 시간과
아직 남아 있는 날들 사이에서
조급해하지 않기로,
나를 너무 다그치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다음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