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을 기억하는 사람, 기억 속에 사는 사람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다.
숫자로는 스물둘, 말로 하면 한 사람의 청춘을 거의 다 건너온 시간이다.
22년 전, 밀양에서 제일 좋다는 예식장에서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날의 풍경은 이제 자세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환하게 웃던 얼굴 하나, 낯설 만큼 단단히 잡았던 손의 온기만이 오래된 사진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때는 몰랐다. 그 하루가 이후의 모든 날들을 끌고 가는 시작점이 될 줄은.
살아오면서 아이를 둘 낳았다.
한 명은 어느새 어른의 문턱에 서 있고, 또 한 명은 그 뒤를 천천히 따라오고 있다. 아이들의 키는 내가 모르는 사이 자랐고, 목소리는 어느 날 갑자기 낮아졌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우리의 시간도 함께 흘러갔다.
잠 못 이루던 밤과 바쁘게 뛰어다니던 낮들이 쌓여 어느새 오늘이 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나는 그 뒷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아버지가 되었다. 더 이상 모든 것을 안아줄 수는 없지만, 여전히 마음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매년 이 날이 오면 아내는 잊지 않고 기념일을 챙긴다.
특별하지 않아도, 말 한마디와 눈빛 하나로 오늘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날임을 알려준다. 나는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그 옆에 서 있다. 기념일을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 속에 사는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나는 종종 말한다.
지나온 세월보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 길지 않을 수도 있다고. 현실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시간 앞에서 조심스레 숨을 고르는 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마음은 분명하다.
오래 살고 싶다. 아내와 함께. 아이들이 완전히 어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고, 그들이 또 다른 가정을 이루는 순간에도 곁에 있고 싶다. 더 많은 평범한 날들을, 특별할 것 없는 하루들을 함께 쌓아가고 싶다.
행복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기념일을 기억해 주는 아내의 마음과, 기억 속에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삶. 아이들의 성장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그 사이를 묵묵히 증명해 주고 있다.
오늘은 결혼 22주년이다.
나는 여전히 말수가 적고 표현에 서툴지만, 마음만큼은 예전보다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 오래, 많이,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을 이제는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기념일을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 속에 사는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또 한 해를 건너간다.
그렇게 우리의 스물둘은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