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신었던, 나의 명품
나는 어렸을 적 하얀 고무신을 신었다.
눈이 시리게 희던 그 고무신은 특별할 것 없는 신발이었지만, 그 시절 나의 하루는 늘 그 신발에서 시작되었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골목을 누비고, 흙먼지가 일던 마당을 가로질러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발자국이 남고, 다시 지워지던 그 길 위에서 나는 하루를 다 썼다.
내 나이 일곱 살 무렵이었다.
부산에 있는 친척집에 가신다며 할아버지께서 길을 나서시던 날, 나는 따라가겠다고 한사코 떼를 썼다. 어머니는 몹시도 나를 혼내셨다. 어린 나를 데리고 다니느라 할아버지가 번거로우실까 봐서였다. 어른의 걱정은 늘 아이의 마음보다 앞서 있었고, 그날의 나는 그저 서러움이 앞섰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가셨다.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시던 그 손의 온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따라간 길에서 시골 장터에 들렀고, 그곳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운동화를 신어보았다.
끈으로 매는 운동화는 아니었다.
촌스럽게 만화 그림이 그려진, 투박한 운동화였다. 반짝이거나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그 신발은 분명 이전의 나와는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는 신발처럼 느껴졌다. 고무신을 벗고 신은 그 운동화는 발에 조금 어색했지만, 괜히 발을 굴러보고 몇 번이나 바닥을 밟아보게 만들었다.
그 운동화는 참으로 귀했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신발이었을지 몰라도, 그날의 나에게는 세상에 하나뿐인 신발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발을 내려다보며 걷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런데도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이상하게도 운동화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여전히 하얀 고무신이다.
값비싼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기능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 신발 안에는 나의 어린 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뛰어다니던 시간들. 아무것도 몰라도 되던 시절의 내가 그 고무신 안에 있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최고의 명품은 하얀 고무신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아직도 그 고무신을 신고 내가 살던 집 마당을 뛰어다닌다. 발바닥에 전해지던 흙의 감촉, 햇살 아래 반짝이던 하얀빛, 그리고 돌아갈 수는 없지만 잊히지도 않는 시간들. 하얀 고무신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