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모든 길이 시작되던 곳

― 실크로드의 첫 문장에 서다

by 홍승표 승우담

1. 도시에 도착한다는 것, 시간에 닿는 일

비행기가 내려앉은 곳은 시안 셴양 국제공항이었다.

그러나 이 도시에 도착했다는 감각은

여느 여행지와는 조금 달랐다.

공항이라는 현대적 공간 너머로,

이곳이 한때 ‘세계의 중심’이었던 도시라는 사실이

조용히 겹쳐져 다가왔다.


시안(西安).


지금은 중국 서북부의 대도시이지만,

오랫동안 이곳은 장안(長安)이라 불렸다.

주나라에서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13개 왕조의 수도였고,

동아시아 정치·문화 질서의 출발점이었다.


여행자로서 시안을 방문한다는 것은

한 도시를 보는 일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를 통과하는 일에 가깝다.

지상에는 현대 중국이 있고,

그 아래에는 한·당의 장안이 있으며,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동서 문명이 처음으로 맞닿았던 흔적들이 묻혀 있다.


2. 공항 위의 두 글자, ‘西安’

시안 공항 건물 위에 올려진 붉은 글자 ‘西安’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그 글자는 이 도시가 여전히

‘서쪽으로 향하는 관문’ 임을 선언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농경 문명에서 초원과 사막으로,

중국에서 세계로 나아가던 길.

그 모든 방향의 시작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오늘날 비행기와 철도가 대신하지만,

과거 이곳을 떠난 이들은

낙타와 말에 의지해 길을 나섰다.

비단과 향신료, 유리와 은화,

그리고 사상과 종교, 기술과 이야기가

그 길 위를 오갔다.

실크로드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 간 대화의 통로였고,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하고 섞이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3. 돌로 새긴 길, 실크로드 군상 조각

시안 외곽, 옛 장안성 개원문 일대에는

실크로드를 기념하는 대형 군상 조각이 있다.

1987년, 실크로드 개통 2100주년을 기념해 조성된 작품이다.

돌로 깎아 만든 인물들은

정지해 있지만,

그 표정과 자세는 분명 이동 중이다.

낙타에 오른 상인,

짐을 멘 수행원,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들.

이 조각이 인상적인 이유는

영웅이나 왕이 아니라

‘길 위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름조차 남지 않았을 평범한 이들이

문명의 흐름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묵묵히 말해주고 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여행자는 언제나 기록자이지만,

이곳에서는 기록 이전에

경청자가 되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4. 실크로드는 왜 시안에서 시작되었는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우연히 시안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도시는

중국 내륙 깊숙이 자리하면서도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통로를 장악한 전략적 요지였고, 동시에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 도시였다.


당나라 시기 장안에는

소그드인, 페르시아인, 아랍 상인들이 거주했고

조로아스터교, 불교, 이슬람교가 공존했다.

시안은 이미 그 시대의

글로벌 시티였다.

그래서 실크로드는

‘길’이기 전에

도시의 성격에서 비롯된 필연이었다.

열린 도시만이 길을 만든다.

닫힌 도시는 아무리 부유해도

길을 내지 못한다.


5. 여행작가의 시선으로, 시안을 걷는다는 것

시안을 여행한다는 것은

유적을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성벽, 병마용, 대안탑은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도시가 어떻게 세계를 상상했는가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이다.

나는 이 도시를

“과거의 수도”로 보지 않는다.

시안은 여전히

길을 만드는 도시다.

다만 그 길이 예전처럼 낙타의 발자국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문화와 사유를 잇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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