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옷을 입고 나는 조금 자란다.

물려받는 옷이 가르쳐준 시간의 온기.

by 홍승표 승우담

나는 어릴 적부터

내 것이 아닌 옷들과 함께 자랐다.

형이 입다 남긴 옷은 늘 내 몸보다 컸고,

소매는 접어 올려야 했으며

색은 계절보다 먼저 바래 있었다.


그 옷들은 언제나

이미 한 번의 시간을 건너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 옷을 입는 날은 드물었다.


명절이 되어야 비로소

‘내 옷’이라 부를 수 있는 한 벌이 생겼고,

그날만큼은 괜히 몸을 곧게 세우고

그 시간이 오래가길 바랐다.

곧 다시 물려 입는 옷으로 돌아갈 걸 알면서도.


그때의 나는

아쉬움을 말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다.

참는 마음, 기다리는 태도,

내 차례를 뒤로 미루는 습관 같은 것들.

지금 생각해 보면

옷보다 먼저

그런 마음들을 물려받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옷이 다시

나보다 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보다 훌쩍 자라 버린

아들의 옷이다.


“아빠, 이거 입어.”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다.

어릴 적 내가 입던

형의 옷과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아들의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몸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먼저 커져 있다.


이 옷에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던 하루와

말없이 지켜본 성장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어릴 적에는

물려받는 옷이

나를 작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이 옷은

누군가에게서 남겨진 것이 아니라

내가 키워낸 시간이라는 것을.


아들의 옷을 입는다는 건

그 아이의 등을

잠시 빌려 입는 일이다.

나보다 앞서 걷는 삶의 기척,

나보다 더 멀리 갈 사람의

든든함을 입는 일이다.

여전히

완전히 내 것인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내 삶이

누군가의 삶이 되었고,

그 누군가가

이렇게 단단해졌다면.

오늘도 나는

아들의 옷을 입는다.

조금 헐거운 소매 끝에서

나는 조용히 느낀다.


이 옷은

내가 살아온 증거이고,

아버지로서

잘 버텨왔다는

작은 위로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