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빠른 사람도, 느린 사람도 아닌
그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세상은 늘 나에게 말한다.
더 강해지라고, 더 빨라지라고,
조금 더 앞서가야 안전하다고.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나는 오히려 반대로 걷고 있었다.
앞이 아니라, 가운데로.
《중용》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 發而皆中節,謂之和。
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 하고
드러나되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한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중용은 감정을 누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기쁘지도 말고, 화내지도 말라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니
중용은 감정을 없애는 삶이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삶은 늘 우리를 시험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의 기분이 바뀌고,
작은 실패 하나에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든다.
그때마다 마음은 쉽게 한쪽으로 기운다.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무너진다.
중용은 그 순간을 붙잡는다.
감정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그 짧은 틈,
바로 그 자리를 ‘중(中)’이라 부른다.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다면
우리는 감정의 주인이 된다.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이 된다.
중은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중용》은 이렇게 말한다.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중은 세상의 큰 근본이고
화는 세상에 통하는 길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바로 서는 일이
곧 세상의 질서라는 말이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관계 속에서
중용을 잃은 말과 행동은
생각보다 큰 파문을 남긴다.
반대로,
한 사람이 중심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주변은 조금 조용해진다.
중용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힘을 가진 덕목이다.
지금의 나에게 중용이란
젊을 때의 나는
늘 극단을 오갔다.
잘되면 하늘 끝까지 올라갔고,
안 되면 스스로를 바닥까지 밀어붙였다.
이제는 안다.
삶은 그렇게 견디는 것이 아니라
조율하며 걷는 것이라는 것을.
기쁘면 기뻐하되, 자만하지 않고
슬프면 슬퍼하되,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해줄 줄 아는 마음,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중용이다.
중용의 마지막은 진실함이다
《중용》은 결국 이 문장으로 향한다.
誠者 天之道也
성자 천지도야
誠之者 人之道也
성지자 인지도야
진실함은 하늘의 길이고
진실해지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
중용은 계산이 아니다.
눈치를 보는 균형도 아니다.
자기 마음에 거짓이 없는 상태,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태도다.
나는 요즘
조금 느려도 좋고,
조금 부족해도 좋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중용은
잘 살아보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오늘도 나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가운데에 선다.
그 자리가, 지금의 나에게 가장 단단한 자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