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칭찬
가르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깊은 칭찬이 있을까?
“孺子可教也.”
이 아이는, 이 사람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은 단순히 ‘똑똑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잘하는 사람에게 붙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말이다.
이 말의 뿌리는 중국 고전 사기 속 한 장면에서 비롯된다.
젊은 시절의 장량은 어느 날 다리 위에서
신비로운 노인을 만난다.
그 노인은 바로 황석공이었다.
노인은 일부러 신발을 떨어뜨리며 장량에게 말했다.
“가져와 신겨라.”
무례하기 짝이 없는 요구였다.
젊은 혈기로는 화를 낼 법도 했다.
그러나 장량은 말없이 다리 아래로 내려가
신발을 주워 정성껏 신겨드렸다.
노인은 다시 시험하듯 약속을 어기고,
여러 번 장량을 기다리게 했다.
그때마다 장량은 묵묵히, 예를 다해 그를 대했다.
마침내 노인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孺子可教也.”
“이 아이는 가르칠 만하구나.”
그리고 장량에게 병법서를 전해주었다.
훗날 장량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 위대한 책사가 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한 가지를 생각한다.
과연 무엇이 장량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지식이었을까?
재능이었을까?
아니면 더 근본적인 것,
배우려는 태도였을까?
살면서 우리는 종종
가르칠 만한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열 줄 아는 사람.
지식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 앞에서
누군가는 결국 이렇게 말하게 된다.
“이 사람은, 아직 더 커질 수 있겠구나.”
가르치는 입장에서
“孺子可教也”라는 말은
아마도 가장 큰 희망일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래서 더 빛날 수 있는 존재를 만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문득,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서 배울 수 있는 사람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 역시 언젠가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조용하지만 깊은 한마디.
“孺子可教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