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서재, 치재를 따라 걷다》

2편. ‘예(禮)’를 품은 정신 – 치재가 남긴 삶의 흔적들

by 홍승표 승우담

치재 홍인우에게 학문은 곧 인격이었고, 삶의 윤리는 철저한 ‘예(禮)’의 실천에서 비롯되었다.

그에게 예는 단순한 외형이나 의례가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인간됨을 지탱하는 근본이었다.


특히 그는 『중용』의 “성(誠)은 하늘의 도이며, 성을 따르는 것은 사람의 도”라는 구절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고, 『대학』에서 강조하는 정심(正心), 수신(修身)의 과정을 실천적 공부의 중심에 두었다.

예는 마음을 가다듬는 시작점이자,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울타리였다.


■ 경전에 뿌리내린 실천적 예론


치재의 예론은 주자학의 원전에서 출발한다.

그는 『예기』·『논어』·『중용』·『대학』을 바탕으로,

예의 본질을 ‘인륜의 질서’로 보았으며, 그 질서가 무너질 때 세상도 혼란에 빠진다고 보았다.


그가 강조한 예는 단지 기제(器制)나 의식 절차에 국한되지 않았다.

예의 기초는 마음의 정성과 성찰에서 시작된다고 본 그는

“예는 겉모양이 아니라, 그 뜻을 따지는 것이며, 이는 오직 성(誠)에서 비롯된다”라고 했다.


그는 유생들과의 논쟁에서도 늘 “경(經)에 근거하지 않은 예는 허망하다”라고 단언했고,

그의 모든 행위는 ‘경전을 근거로 한 실천’이라는 원칙에 철저히 따랐다.


■ 몸과 삶으로 실천한 예


학문과 행실을 나누지 않았던 치재는,

예를 머리로만 공부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온전히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사적인 공간에서도 항상 예복을 갖춰 입었고,

혼자 책을 읽을 때도 무릎을 가지런히 하고 자세를 바로 했다.


‘신독(愼獨)’—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스스로를 경계하고 조심하는 자세는

치재가 평생 지키려 한 예의 핵심이었다.


그는 날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세수하고 책상 앞에 정좌했으며,

절제된 식사, 절제된 말, 절제된 행동을 일상화했다.

‘수기치인(修己治人)’ 이전에 ‘수기(修己)’ 하나에 평생을 바친 셈이었다.


■ 조광조의 뜻을 잇고, 시대의 학문을 기록하다


치재는 정암 조광조의 문집을 손수 정리하고 유고를 간행하는 데 헌신했다.

조광조는 사림파의 상징이자 도학적 이상정치를 꿈꾼 인물이었고,

그의 뜻이 유배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대 학문과 정신으로 이어지기를 치재는 바랐다.


또한 그는 관동지방을 유람하며 『관동일록』을 남겼고,

이는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예의 눈으로 본 자연과 인간의 기록’이었다.

이 책에 퇴계 이황이 직접 발문을 써준 것도

치재의 학문과 문장이 조선 유학계에서 높이 평가되었음을 보여준다.


■ 예는, 그에게 ‘도(道)’였다


치재에게 있어 예는 단지 질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도리였고,

학문을 통한 자기완성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상중(喪中)에도 예를 다하고자 여막에 머물렀고,

무리한 예지(禮志) 속에서 병을 얻어 생을 마쳤다.

죽음조차도, 치재는 예 속에서 맞았다.

작가의 이전글내 마음의 서재, 치재를 따라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