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의 어린 날이 산다
저 산을 바라볼 때면
늘 마음 한구석이 묵묵히 따뜻해진다.
마치 먼 길을 돌아 다시 고향집 마루에 발을 들여놓은 듯,
가슴 깊은 곳에서 잊고 지냈던 시간이 문득 되살아난다.
저 산 너머에는 아직도 내 어린 날의 웃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는 참 단순했다.
작은 일에 쉽게 기뻐했고,
조금만 상처받아도 금세 잊고 다시 뛰어놀던 그런 아이였다.
햇살에 데워진 흙냄새를 맡으면서
맨발로 뛰어다니던 그 순간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저녁 무렵이면
친구들과 아무 이유도 없이 깔깔대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
그 모든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따뜻하고, 그리운 기억들이다.
어린 시절의 행복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잠자리채 하나만 있어도 세상이 즐거웠고,
동네 어귀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으로도
‘오늘은 좋은 날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가 부르는 저녁밥 짓는 냄새가
온 동네에 퍼져오면,
그 냄새를 따라 뛰어가던 발걸음마저도
행복의 일부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때의 소중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아무리 긴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도,
누가 대신 나를 불러주는 저녁밥 냄새는 없다.
걱정 없던 날들의 뒤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손길이,
내가 알지 못했던 따뜻한 배려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저 산을 바라본다.
그 산 너머로 해가 넘어갈 때면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그 산 언덕 어딘가에 서서
해맑은 얼굴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듯하다.
“괜찮아.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해도 괜찮아.
천천히 돌아와도 돼.”
그 아이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들려온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묘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삶이 조금 벅차다고 느껴질 때마다
저 산 너머에 남아 있는 그 아이가
조금은 천천히, 조금은 부드럽게 걸어가라고
나에게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저 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여전히 그 너머에는
내가 잃어버린 것 같았던 시간들이
고요한 빛으로 숨 쉬고 있고,
그 시간들은 언제든
지친 나를 품어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 산 너머에는,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기억의 둥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