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낮의 햇살 아래서-
51년 전,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冬至)의 낮.
겨울 햇살이 드물게 집 안으로 비 쳐들던 그 시간,
나는 조용히 이 세상에 첫 숨을 내쉬었다.
우리 집은 참으로 북적이는 대가족이었다.
증조부모님, 조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두 살 터울의 형까지—
언제나 사람 사는 소리가 가득한 집.
찬 바람이 문틈을 스칠 때면 아랫목의 온기가 더 따뜻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 겨울, 어머니는 유독 바쁘고 힘드셨을 것이다.
시어른을 모시며 큰집살림을 하던 그때,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형의 손을 잡고
쌀을 일고, 장작을 날라 군불을 지피고,
온 집안의 따뜻함을 어머니의 손끝으로 지켜내던 시절.
그런 와중에 동지 낮의 햇살 아래,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태어났다.
한겨울이라지만 낮의 햇빛은 생각보다 따스했을 그 순간,
어머니는 지친 숨결 사이로 작은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셨겠지.
고단했을 텐데도,
그 품은 세상 무엇보다 넉넉했을 것이다.
대가족의 풍경은 나의 첫 기억이 되었다.
증조부모님의 느린 걸음,
할머니의 구수한 된장 냄새,
할아버지의 굵은 손과 낮 일의 땀,
형의 작은 웃음과 넘어지는 발걸음.
그 모든 흔적이 나라는 사람을 만든 따뜻한 밑불이었다.
동지는 ‘빛이 돌아오는 날’이라 한다.
가장 어둡던 계절이 끝나고
서서히 햇살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때.
아마 그래서일까,
나는 늘 겨울 속에서도 따뜻한 것을 찾아내며 살아온 것 같다.
가족의 온기, 사람의 정, 작은 희망들처럼 말이다.
51년 전 동지,
한겨울 낮의 햇살을 등에 업고 태어난 나.
그날의 온기와 사랑을 떠올려 보면
지금의 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아주 선명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나는 그 햇살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동지의 낮처럼, 짧지만 깊고 따뜻한 빛을 품은 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