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드리운 고요
눈이 내리는 밤이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멀어진다.
바람도, 자동차의 소리도, 사람들의 분주한 걸음도
하얀 눈 속으로 파묻히며 조용히 사라진다.
그 고요 속에 서 있으면,
마치 시간마저 천천히 흘러가는 것만 같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하얗고 작은 조각들이 어깨 위에 내려앉을 때면
어떤 위로도 담지 못했던 하루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손을 내밀면 금세 녹아버리는 눈처럼
잡아두고 싶었던 순간들도
붙들고 있었던 후회들도
스르륵 사라져 버린다.
조심스레 한 걸음 내딛자
새하얀 길 위에 내 발자국이 찍힌다.
흔적 없던 공간에
‘내가 지나가고 있음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이 밤이 더욱 특별해진다.
조용한 눈길 위에서
나는 지나온 시간을 떠올린다.
애써 잊으려 했던 일들,
나를 웃게 하고 또 아프게 했던 순간들,
모두 이 고요한 밤을 타고 마음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눈 내리는 밤에는 그 모든 기억이
불편한 무게가 아니라
조용한 빛처럼 느껴진다.
마치 오래된 슬픔까지도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만 같다.
차갑지만 따뜻하고, 고요하지만 풍성한
겨울밤만의 기척이 있다.
걸음을 이어가며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주는 밤이 있어
우리는 다시 다음 날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 건 아닐까.
어둠보다 빛이,
혼란보다 고요가,
상처보다 치유가 가까운 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닐까.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나는 그 속을 한참 동안 걸었다.
발자국은 뒤에 남았지만
마음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의 나는,
눈 내리는 밤 사이에서
조용히 다시 시작될 나를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