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잠들지 못한 마음

― 이조년의 「이화에 월백하고」

by 홍승표 승우담


배꽃이 피는 밤은 유난히 조용하다.

흰 꽃잎 위로 달빛이 내려앉으면, 세상은 잠시 멈춘 것처럼 고요해진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유독 잠들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고려 말의 문인 이조년은 그런 밤을 시조 한 수로 남겼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이 시조를 처음 읽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꽃이 피고, 달이 뜨고, 밤이 깊어질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번을 되읽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흔들린다.


‘이화에 월백하고’라는 첫 구절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다.

배꽃의 흰빛과 달빛의 흰빛이 겹쳐진 밤.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깊은 삼경.

외부 세계는 더없이 고요하지만,

이 고요함이 오히려 마음을 깨운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크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일지춘심’,

한 가지에 깃든 봄날의 마음이 있다고만 말한다.

사랑이라 부르지도, 그리움이라 단정하지도 않다.

다만, 그 마음을

두견새조차 알지 못할 만큼

조심스럽게 품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시조는 더 오래 남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읽는 사람 각자의 마음이

그 자리에 조용히 들어선다.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서야

시인은 비로소 자신의 상태를 말한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정이 너무 깊어 병이 된 듯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사랑이 병이 되는 순간은

대개 요란하지 않다.

눈물도 없고, 말도 없다.

다만 밤이 길어지고,

생각이 잦아들지 않을 뿐이다.


이조년의 시조는

고려라는 먼 시대의 작품이지만,

우리가 오늘 밤 겪는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말하지 못한 감정,

놓아야 하지만 놓지 못한 마음,

그리고 잠들지 못한 채

혼자서 견뎌내는 시간.


아마 그래서 이 시조는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읽힌다.

배꽃은 해마다 지고,

달은 수없이 기울었지만,

다정함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마음만은

시대를 건너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

괜히 잠이 오지 않는다면

달빛 아래 이 시조를 한 번 떠올려 보아도 좋겠다.

그 밤을 이미 건너간 누군가가

같은 마음으로 깨어 있었음을

조용히 알아차리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