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 내어

― 기다림을 접어 두는 마음

by 홍승표 승우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


동짓달의 밤은 유난히 길다.

어둠은 쉽게 물러나지 않고, 마음은 자꾸만 누군가를 향해 간다.

황진이는 그 길고 차가운 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녀는 상상 속에서 그 밤을 베어 낸다.

견디기만 했던 시간을,

사랑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긴 밤은 외로움이지만,

그 외로움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

사랑은 더 깊어진다.

황진이의 기다림은 체념이 아니라 선택이다.


― 사랑은 시간을 버리지 않는다


잘라낸 밤은 버려지지 않는다.

그녀는 그것을 따뜻한 곳에 둔다.


봄바람이 드는 이불 아래,

서리서리 접어 넣는다.

겨울 속에서도 봄을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마음,

사랑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지금의 추위를 견디게 하는 것은

다가올 온기를 믿는 힘이다.


기다림은 아픔이 아니라

사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녀는

가장 차가운 밤을

가장 따뜻한 자리 속에 숨겨 둔다.


― 님이 오는 날, 밤은 다시 펼쳐진다


그리고 마침내

님이 오는 날의 밤이 오면,

접어 두었던 그 밤들을

굽이굽이 펴겠다고 말한다.


기다림은 그날을 위해 존재했다.

홀로 견뎌온 시간들은

함께 머무는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사랑은 이렇게 시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곱게 간직해 두었다가

다시 내어놓는 것이다.


― 우리에게도 동짓달의 밤은 있다


황진이의 시조는

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보낸 밤,

마음속에 접어 두었던 수많은 생각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그리움들.


우리도 각자의 동짓달을 지나며

밤을 하나씩 접어 두고 살아간다.

언젠가 그 밤을

다시 펼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그래서 이 시조는 오래 남는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기다림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말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