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를 잇는 사람

승우담(承又潭)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

by 홍승표 승우담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 글은 무엇을 새롭게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조용히 잇고 있는가.


새로움은 언제나 매력적인 말이다.

그러나 가벼운 새로움은 오래 남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이미 충분히 깊어진 사유의 자리를 먼저 바라본다.


깊이는 이어질 때 의미를 가진다


나는 나의 글쓰기 태도를 승우담(承又潭)이라 부른다.

잇다 승, 다시 우, 깊을 담.

다시 깊이를 잇는다는 뜻이다.


사유는 어느 한 시대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사유는 언제나 미완이며,

그 미완의 깊이가 다음 사유로 이어질 때

비로소 흐름이 된다.

승우담이란, 그 흐름을 끊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법고창신은 창작의 기술이 아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은 흔히 창작의 방법으로 설명되지만,

나에게 이 말은 오히려 글쓰기에 대한 윤리에 가깝다.


옛것을 본받는다는 것은

그 권위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그 사유가 형성된 맥락과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태도다.

새로움은 그 이해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절일 뿐이다.


기록은 과거에 있지만, 질문은 현재에 있다


고전과 역사 기록은 과거의 언어로 쓰였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그 문장들을 해석하기보다,

그 질문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묻고 싶다.


과거를 말하는 일이 아니라,

과거와 함께 현재를 사유하는 일.

그 지점에서 글쓰기는

지식이 아니라 사유가 된다.


나는 새로움을 만들기보다 깊이를 잇고 싶다


나는 빠른 결론보다 천천한 문장을,

화려한 표현보다 오래 침전된 언어를 믿는다.

그래서 나의 글은 언제나

이미 존재하는 사유의 깊이에서 시작된다.


승우담(承又潭)—

다시 깊이를 잇는 일.

법고창신(法古創新)—

그 깊이 위에서 오늘을 말하는 일.


이 두 마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글을 쓴다.

사유의 흐름이 다음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