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깨우는 영혼의 울림, 무을 농악

기억의 저편에서 소환된 고향의 소리.

by 홍승표 승우담

​고깔 아래 피어나는 역동적인 가락

​양손에 쥔 북채가 번개처럼 허공을 가르고, 머리 위의 커다란 흰 고깔은 춤사위를 따라 우아하면서도 힘찬 포물선을 그린다. ‘둥, 둥’ 대지를 울리는 웅장한 북소리는 듣는 이의 심장 박동을 단숨에 가로챈다. 내 고향 구미의 ‘무을 농악’은 그렇게 강렬한 남성미와 역동적인 북춤으로 내 기억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공연장이나 기록물 속에서 주로 만나는 귀한 몸이 되었지만, 내게 이 소리는 눈을 감으면 언제든 눈앞에 펼쳐지는 생생한 고향의 풍경화다.


​수다사의 전설과 삶의 가락

​무을 농악은 그 유래부터가 남다르다. 옛날 수다사의 승려들이 승무의 북 기법을 농악에 접목하며 시작되었다는 전설처럼, 그 가락 속에는 수행자의 정진과 민초들의 삶이 묘하게 공존한다. 꽹과리가 천둥처럼 흐름을 이끌고 징이 바람처럼 여운을 남기면, 장구는 빗소리가 되어 흥을 돋운다. 하지만 그 중심에서 구름을 불러 모으듯 육중하게 울려 퍼지는 것은 단연 북소리였다.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도구를 넘어, 그것은 마을 전체를 하나로 묶는 거대한 생명력의 외침이었다.


​한가위, 마을을 하나로 묶던 신호탄

​어린 시절, 농번기가 끝난 고향 마을에는 기분 좋은 축제의 기운이 감돌았다. 한가위가 다가오면 집집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담장을 넘어 퍼졌고, 바쁜 일손을 놓은 사람들은 오랜만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넉넉한 웃음을 나눴다. 그 잔치의 정점을 찍는 것은 언제나 농악대였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들려오는 북소리는 흩어져 있던 마음들을 불러 모으는 마법 같은 신호였다. 양손에 북채를 쥐고 온몸을 던져 북을 치는 장정들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 마치 거대한 거인들이 펼치는 신비로운 축제처럼 보였다.


​다시 만난 고향의 언어

​세월이 흘러 도시의 소음에 길들여지면서 고향의 소리는 기억 저편으로 서서히 밀려났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시절 우연히 마주한 연희패의 공연 현장에서 나는 그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낯선 도심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무을의 장단이 내 마음의 현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 시간의 문이 열리듯 흙먼지 날리는 마을 골목에서 소리를 따라 뛰놀던 꼬마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소환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고된 노동을 이겨낸 사람들의 기쁨과 삶의 리듬이 담긴 뜨거운 언어였다.


​향수로 남은 영원의 멜로디

​이제 무을 농악의 빠른 진풀이와 화려한 춤사위는 내 영혼이 언제든 돌아가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일상이 고단할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그날의 북소리를 다시 연주해 본다. 커다란 고깔이 하얗게 흩날리던 그 역동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멈춰있던 삶의 의욕이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한다.

​무을 농악은 내게 전통문화 그 이상의 의미다.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즐거움과 마을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보물상자이자, 영원히 멈추지 않을 내 마음속 기쁨의 멜로디다. 오늘도 그 힘찬 북소리를 따라, 나는 그리운 고향 골목을 다시 한번 흥겹게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