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았지만 아직 벗지 못하는 이유.
오늘 아침, 현관문을 여는 순간 찬 공기가 몸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텐데, 요즘은 이런 날씨 변화에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나는 잠시 서랍 앞에 서서 갈색 목도리를 꺼냈다.
이 목도리는 5년 전, 누군가에게서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특별한 날도, 거창한 말도 없었다. 그저 “추울까 봐”라는 짧은 한마디와 함께 건네받은 물건이었다. 그때는 이 목도리가 이렇게 오래 곁에 남을 줄 몰랐다. 이제는 끝단이 조금 해지고 보풀도 일었지만, 겨울이 시작되면 나는 늘 이 목도리를 가장 먼저 찾는다.
목에 목도리를 두르면 체온보다 마음의 온도가 먼저 올라간다. 단순히 따뜻해서는 아니다. 이 목도리에는 지난 몇 해 동안 내가 견뎌온 시간들이 조용히 스며 있다. 책임이 늘어가던 시기, 말없이 넘겨야 했던 일들,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들이 이 천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혼자 숨을 고르던 아침에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던 밤길에서도 이 목도리는 늘 목 위로 바짝 올라와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제 자리를 지키는 방식으로 나를 감싸주었다.
언젠가부터는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나를 먼저 움직이고, 그 무게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감당하는 시간이 내 하루의 대부분이 되었다.
이제는 안다. 나에게 이 목도리는 단순한 방한용품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이라는 바람 앞에서 최소한의 온기를 지켜주는, 나만의 작은 방패라는 것을.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물건은 이렇게 오래 남아, 말 대신 역할을 한다는 것도.
낡았다는 것은 오래 견뎌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이 목도리를 두르고 현관문을 나선다. 크게 위로받지는 않아도,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