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서울청년센터 강북 커뮤니티 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매우 가려 보는 편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내가 굉장히 고상한 취향을 지닌 유별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HSP의 일반적인 특징 중 심미안(審美眼)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게 남들과는 다른 탁월한 미적 감각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내가 특별히 가리는 건 등장인물이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콘텐츠들이다.
잔인한 장면에서 처음으로 울렁거림을 느꼈던 건 겨울방학을 앞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교과 과정이 모두 마무리되어 수업 시간은 자유로웠고, 학교는 거의 놀러 가는 공간이었다. 대개는 친구들과 잡담하며 놀았지만, 종종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그렇게 봤던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사탄의 인형 2>였다.
영화 장르가 원래 공포인 것도 있었지만, 내가 더 섬뜩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인형이 망가지는 장면이었다. 인형 공장에서 살인마 인형이 비명을 지르며 주인공을 쫓아오는데, 그 과정에서 인형은 철창에 낀 손목을 억지로 빼내려다 손목이 뜯겨 나가기도 하고 팔다리를 붙이는 공정에 빨려 들어가 꿰매이기도 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훼손된다.
주인공을 해치려는 악당이었지만,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인형을 보고 있자니 끔찍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몇 주 정도는 후유증에 시달렸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너무 어려서 그런 거고 어른이 된다면 이런 영화도 문제없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잔인한 장면에 대한 내성이 남들보다 떨어진다고 처음 느꼈던 건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그날은 내가 어울려 다니던 무리의 친구 중 한 명의 생일이었고 다 함께 놀기 위해 생일이었던 그 친구의 집에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도착해 보니 먼저 모여있던 친구들은 영화를 보고 있었다.
친구들이 보고 있는 건 전쟁 영화였다. 영화에서 내게 충격을 줬던 장면은 폭격 장면이었다. 주인공 무리가 적에게 포위되어 열세에 놓이자, 지원 폭격을 요청한다. 그런데 그 폭격에 주인공의 동료가 휘말리게 된다. 폭격에 휘말린 사람을 묘사하는 게 끔찍했는데, 스크린에는 화마 속에서 뼈가 드러날 정도로 피부와 근육이 모두 녹아내려 군복과 같이 흘러내리는 장면이 여과 없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단순히 끔찍하다는 생각을 넘어 무언가 내상을 입는 느낌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친구들은 무엇이 그리 궁금했는지 영화에 관심을 보였고, 친구들은 소재를 공유하기 위해 그 장면을 다시 돌려 보았다. 나는 “다 지나가면 말해줘.”라며 귀를 막고 얼굴을 이불에 파묻었다.
그 후로 잔혹한 영화는 확실히 피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내 의지와 관계없이 한 번 더 그런 영화를 보게 되었고 불편한 걸 넘어 신체적인 이상 현상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미션 스쿨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종교 수업이 시간표에 함께 편성되어 있었다. 사건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벌어졌다. 종교 수업은 교내 목사님이 진행했는데 그날은 영화 감상으로 수업을 대체하는 날이었다. 영화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의 3일을 묘사한 영화였는데, 내가 지금까지 봤던 영화 중 단연코 가장 잔혹한 영화였다. 채찍질에 살점이 뜯겨 나가고 십자가에 매달려 못 박히는 끔찍한 광경을 마주하자 영화를 더 보고 싶지 않았지만, 수업 시간 중 마음대로 뛰쳐나갈 수는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중 나는 문득 내 몸에 문제가 생긴 걸 느끼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바닥에 흐른 휘발유 자국처럼 시야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가까스로 교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았지만 이내 완전히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각에서 시작된 이상 현상은 청각으로 이어졌다. 마치 터널에 들어선 것처럼 귀가 먹먹해지더니 이내 소리조차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장애에 나는 도움을 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얼어붙어 있었다. 혼란 속에 시간 감각마저 잃어 내가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잠시 뒤 일렁이는 시야 속에서 친구들이 교실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고, 터널에서 빠져나오듯 소리도 다시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로도 한참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실재와 허구를 막론하고 나는 누군가 고통받는 걸 보는 게 힘들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콘텐츠를 보는 것에 그리 큰 문제를 겪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브레이브 하트>, <올드보이> 등 명작으로 알려진 영화들조차 보기 힘들었던 나는 내가 유난히 소심하고 겁쟁이인 거라 생각했다. 뭔가 훈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잔인한 장면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나아지기는커녕 후유증만 더 심해질 뿐이었다.
그 후로 한참을 더 지나서야 HSP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내가 겁쟁이라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잔인한 장면을 일부러 찾아봤던 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언가 잘못된 존재라 생각한 미련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억지로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가까이하려 한다. 어두운 배경보다는 미려한 수채화 같은 풍경을, 긴장감이 감도는 날카로운 멜로디 보단 부드러운 선율을, 사랑이나 복수를 다루는 강렬한 내러티브보다는 은은한 일상물을 조금 더 찾아본다.
이제 나는 나의 민감함을 조금 더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