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청년 문제를 논의하는 한·일 국제토론회에 다녀왔다.
지인에게 소식을 듣고 토론회가 열리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은둔 생활을 했고, 내가 브런치스토리에서 다룰 주요 소재 중 하나라서 글쓰기에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반가운 마음으로 참여를 결심했다.
토론회는 서울시청 별관에서 이루어졌다. 토론회장 앞에서는 토론회에서 다룰 상세한 내용이 적힌 안내서적과 동시통역 수신기를 배부하고 있었다. 이런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참여해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나는 신기해하면서도 살짝 들뜬 마음으로 회장에 들어갔다.
사실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우리나라의 고립·은둔청년이 완전히 같은 개념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 단절이 두드러진 집단으로 분류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개념을 정의하고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어쨌든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히키코모리 문제를 겪었기에 이 분야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선배 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내용이 다루어졌지만 그중 내가 혹한 것은 첫 발제를 맡은 이데 쇼헤이 교수님의 "중간 노동"이라는 개념이었다.
일본에서는 최저임금을 밑도는 수준의 일을 가리켜 "중간 노동"이라 부른다고 한다. 불법 아니냐고? 물론 불법이다. 하지만 중간 노동이 언급된 건 히키코모리에게 불법적인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뜻에서가 아니었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히키코모리가 사회로 복귀하는 데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 중 하나는 이들이 최저임금만큼의 가치를 창출해 내기 힘든 상태일 때이다. 아무래도 은둔 생활의 영향이 있으니 일반적인 직무 역량을 기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구직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최저임금 아래의 급여로 누군가를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어떤 면에서는 최저임금 제도가 히키코모리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내기도 하는 것이다.(일본은 최저임금과 실제 노동가치의 간극을 정부지원금으로 메꿔서 법령을 준수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급하는 임금이 최저임금에 약간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절한 사회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는 논지였다.
어떤 면에서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솔깃하게 들렸다.
은둔 시절 자주 했던 생각이 있다. 차라리 급여를 최저임금보다 덜 받아도 좋으니까 잘하지 못해도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주고, 실수도 어느 정도 용인받을 수 있는 그런 일자리는 없는 걸까? 당연히 그런 일자리는 없다. 애당초 불법이기도 하거니와 사용자 입장에서는 누군가를 고용한다면 못해도 최저임금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만한 사람을 고용하고 싶을 테니까.
하지만 중간 노동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사회에 바로 진입하기엔 아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 입장에선 급여가 조금 떨어지는 대신 책임감도 그만큼 덜어낼 수 있는, 말하자면 최적의 좌절을 경험할 기회가 생긴다. 반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인력이지만 비교적 저렴하게 인력을 충원할 수 있다. 고립·은둔청년과 이들을 채용하는 기업 사이에서 새로운 타협점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서울청년기지개센터에서 일경험 사업에 참여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오랜 은둔 생활로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게 마음에 걸렸고, 7년이라는 무지막지한 공백기와 함께 구직 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너무 겁이 났다. 그래서 우선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서 성취감을 느껴볼 기회가 필요했고 그걸 충족시켜 줄 거라 기대했던 게 기지개센터의 일경험 사업이었다.
거기에 발제를 맡아주신 두 분이 공통적으로 높게 평가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피어 서포트(Peer-support)의 힘이었다. 고립·은둔청년들이 취업 체험 등에 참여하며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이들을 다잡아주는 건 전문적인 정신건강 서비스보다도, 비슷한 경험을 한 동료의 지지와 공감이라는 것이다. 중간 노동이 제도화되어 잘 정착될 수 있다면, 어쩌면 비슷한 경험을 한 청년들 사이에서 더 많은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 있고 이들 사이에서 더 많은 정신적 지지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예상되는 부작용 또한 지적되었다. 취지는 좋지만 늘 그렇듯 악용하려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다. 중간 노동을 제공한다며 고립·은둔청년들을 돕는다고 표방하면서도, 실제론 값싼 노동력을 손쉽게 충원하려는 악덕 업주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고립·은둔청년들에게 안전한 사회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업장을 발굴하고 유지, 검증하는 건 추가적인 사회복지 인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기지개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일경험 사업에조차 지원률이 저조하다는 김주희 센터장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 수요조차 그리 많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충분한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복지 서비스라면 굳이 비용을 들여서 발전시켜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토론회가 끝나고 복잡한 마음으로 회장을 나왔다. 기지개센터에서의 일경험은 내겐 정말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다른 고립·은둔청년들에겐 아닌 걸까. 나도 오랜 기간 은둔 생활을 했지만, 고립 말고는 서로 공통점이 하나도 없을 또 다른 고립·은둔청년들. 대체 다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직접 읽어본 책은 아니라 인용할 때마다 뜨끔하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그 구절이 다시금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