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아아아"
고요한 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손목을 때린다. 눈처럼 하얀 욕조에 옅은 선홍빛이 번져나간다.
"지긋지긋하다 정말."
결국 또 참지 못했다. 이렇게 될 걸 알면서 왜 그랬을까. 이젠 후회마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쓴웃음이 나왔다.
피가 흘러들어 가고 있는 하수구를 멍하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HSP들은 다양한 감각 과부하에 시달리지만, 그 스펙트럼은 같지 않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시각과 촉각에 유독 예민하고, 어떤 사람은 대부분의 감각에 예민하지만 후각에는 둔감하거나 하는 등, 같은 HSP라도 다양한 민감성을 보이는 것이다. 나도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 기질을 갖고 있지만, 날 가장 자주 괴롭힌 건 촉각이었다.
나는 촉각이 예민하다. 어딘가에 앉을 때면 앉는 감각이 조금만 달라져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따가운 느낌이 나는 옷은 절대 입지 않는다. 간혹 털이 뽑히거나 살이 찝히는 대나무 재질 방석이나 돗자리는 질색팔색한다. 하지만 내가 괴로웠던 건 단순히 감각이 예민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자주 피부 질환에 시달렸다. 사소한 자극에도 피부가 붓거나 가려워지곤 했고, 그 시절 긁으려고 칭얼대는 나와 긁지 못하게 하려는 어머니의 다툼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피부 때문에 처음으로 크게 고생했던 건 새 집으로 이사했던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즈음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신축 아파트였다. 사실 새 집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의 냄새는 오히려 기분 좋은 냄새로 남아있다. 인테리어에 쓰인 다양한 화학품 냄새였겠지만, 새집에서 지낼 거라는 설렘이 코끝에서부터 온몸에 가득 담기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새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등에 붉은색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를 피부과에 데려갔고 피부과에서 그때 처음으로 들었던 이름이 아토피성 피부염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는데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긁지 말고 약 잘 먹으라는 말만 알아들은 채 병원을 나왔다.
하지만 병원을 아무리 열심히 다녀도 피부는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을 옮겨보기도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당시에 날 미치게 만든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었다. 그냥 안 긁으면 되지 않냐고? 안다. 그런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아 정확히 알기는 힘들지만, 혹시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금연에 도전할 때 이런 기분인 거라면 나는 금연에 성공한 사람을 초인으로 볼 것 같다.
게다가 가뜩이나 가려워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어머니가 날 대하는 태도는 내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어머니는 날 환자가 아닌 어딘가 문제가 있는, 이상한 아이 취급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멀쩡한데 왜 너만 이런 거냐는 타박은 그 당시 내가 어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피부에서 오는 괴로움과, 내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자괴감이 합쳐져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없이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그렇게 반년 정도는 병원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반년 정도가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피부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병한 걸로 미루어 소위 말하는 "새집 증후군"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뿐이다. 당시 TV 프로그램에서 이를 다룬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그걸 보고 박수를 치며 "저거였구나!"하고 감탄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피부 때문에 가장 괴로웠던 시기는 군복무 때였다. 나는 공군 급양병으로 복무했는데, 식당 일이 원체 그렇듯 근무 시간에는 늘 고무장갑을 끼고 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었을 무렵. 손등과 손목 근처에서 붉은 두드러기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근무 시간에는 그나마 일에 집중해서인지 가려움을 느낄 새가 없었지만,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정신을 분쇄하는 듯한 가려움이 나를 찾아왔다.
군의관님은 고무 알레르기를 의심하며 최대한 고무장갑과 피부의 접촉면을 줄이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나는 고무장갑 안쪽에는 면장갑을 착용하고 상의는 가뜩이나 뜨거운 주방에서, 심지어 여름에도 긴 팔을 입은 채 일을 했다. 그럼에도 피부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스트레스 때문인지 이번에는 상체가 아닌 하체에도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종아리 근처에도 붉은 두드러기가 올라왔고 손목과 마찬가지로 돌아버릴 것 같은 가려움을 불러왔다.
군대에서 겪었던 가려움증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나를 힘들게 했다. 한 번은 손바닥이 너무 가려워서 벅벅 긁었는데, 손바닥을 긁자니 간지러움까지 같이 느껴져서 시원하게 긁기가 힘들었다. 고민하던 나는 손바닥을 비벼서 마찰열로 가려움을 해결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비빈 탓일까. 손바닥을 비비다가 검지손가락 근처 직경 1cm 정도의 살점이 뭉텅이채 뜯겨 나간 일도 있었다. 당시 나는 이등병 막내였는데, 그거 때문에 근무에서 열외 했다가는 밉보일 거 같아서 한동안은 쓰라린 손바닥을 숨기고 지내느라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당시 내 상태가 정말 심각하긴 했었던 것 같다. 지나가다 우연히 날 봤던 선임들은 손목을 잡아채며 "야, 너 이거 뭐야? 왜 이래?"와 같은 반응을 보이곤 했다.
피부 때문에 국군수도병원에 방문했을 때 당시 그곳에서 진료를 받았던 군의관님의 반응도 기억에 남아있다. 진료실에 들어가 증상을 말하고 손을 보여주자마자 군의관님은 아연실색을 하며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너 같은 애들 오면 반가워. 너처럼 진짜 환자가 와야지 무슨 맨날 꾀병 부리는 놈들만 오는지."라고 말하며 약을 처방해 주셨던 모습이 기억난다. 군의관님은 매일 밤 약을 꼭 바르고, 자다가 무의식적으로 긁지 않도록 비닐장갑을 끼고 잠들 것을 신신당부하며 나를 내보냈다.
피부가 그런데 식당에서 일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른의 사정인지 아니면 원래 군대가 그런 곳인지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어쨌든 나는 전역하는 그날까지 내 피부의 알레르기 반응과 줄다리기를 하며 지냈다.
새집 증후군과 군대. 내가 피부과 전문의는 아니니 정확한 원인이 무엇일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다만 돌이켜보면 급격한 환경 변화가 생겼을 때 그 변화에 동반된 스트레스가 내 피부를 더욱 자극했던 것 같다. 스트레스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을 때 그것이 고스란히 피부로 나타난 셈이다.
그래서인지 익숙하고 안전한 공간인 집에서도, 과거만큼 심하진 않지만 여전히 피부는 종종 날 괴롭힌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내 주변에서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 신경이 곤두선 날 밤이면, 손목에는 참기 힘든 가려움과 함께 과거에 날 그토록 괴롭혔던 붉은 두드러기가 다시 피어오른다.
피를 얼추 씻어내고 물기를 닦은 뒤, 침대보에 피가 묻지 않게 두 팔뚝을 위로 들고 침대에 누웠다. 스트레스 관리 빵점. 손목에 쓰인 형편없는 점수를 보며 벌을 서듯 팔뚝을 위로 올리고 있는 내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힘든 시간을 보냈을 내 몸에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사과하는 의미에서 내일은 1시간 더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