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청년 지원정책 포럼에 다녀오다 (1)
서울청년기지개센터에서 주최하는 고립·은둔청년 지원정책 포럼에 다녀왔다.
센터에서도 이례적으로 크고 중요한 행사였는지 도착해 보니 기지개센터 직원분들이 거의 다 나와 있는 듯했다.
어린 시절 현장 학습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지겹도록 드나들었지만,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번에 처음이었다. 포럼 시작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박물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늑하고 조용한 공간이 많아 집 근처에 있었다면 자주 왔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프닝으로 기지개센터 센터장님과 서울시 미래청년기획관님의 기조발제가 시작됐다. 서울시 청년정책의 흐름과 기지개센터 운영 현황, 그리고 아직 이르긴 하지만 올해 센터의 성과 등을 전반적으로 훑어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사실 내게도 기지개센터로부터 사례발표를 해달라는 부탁이 왔었다. 작년부터 기지개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던 만큼 발표를 한다면 할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자료가 외부로 나갈 수 있다는 말에 부담을 느껴 에둘러 거절했다.
내 눈길을 끈 건 고립·은둔청년을 자녀로 두고 있는 한 어머님의 부모 교육 사례였다. 그중 내 주의를 끈 대목은 다음과 같았다.
수능을 치르고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알바도 하고 운전면허도 취득하며 평범하게 지냈는데 수능 결과가 본인이 기대하는 결과로 나오지 않았는지 좌절을 하게 된 듯합니다. 아들은 안양에 있는 전문대학에 입학을 하고 O.T를 다녀온 후, 그동안 알바하고 받은 금액으로 컴퓨터를 사서 방으로 들어가서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 게임만 하며 지내다 결국 자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군대를 먼저 다녀오면 어떻겠냐'는 말에 군대를 다녀와서는 또다시 은둔하며 게임만 하였고 이제는 방문을 굳게 잠그는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 단절을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예비군 훈련은 다녀오곤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가난하고 배고프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거기다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어린 나이에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원가정의 가계를 도와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자식만은 좋은 대학을 나와 힘들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해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인터넷 시대에 컴맹이어서, 아들이 컴퓨터로 시간을 보낼 때 도움을 주지 못해 죄인처럼 자책감과 수치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역기능 가정의 사정을 가슴에 묻고 그렇게 가슴앓이 하며 살아왔습니다.
발표하는 어머님의 답답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한편, 그 청년이 왜 은둔하게 되었을지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대학 재학 시절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입학 등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게 되었지만 학교에 불만을 갖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술을 연거푸 들이키며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거기는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우리 학교에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추가합격으로 입학했던 한 친구가 말했다.
"어. 나는 이 학교 되게 오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자녀는 수능이 끝난 뒤 대학 O.T를 갔다 온 후 은둔 시작. 그리고 은둔 원인을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부모님.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머님도 발표에서 모든 걸 언급하시진 않았을 거고 어머님조차 생각지 못한 더 깊은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 청년에게 부모님의 기대는 격려보단 부담이 되었고, 대입 결과가 꿈보단 좌절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갔을 그 청년의 심경이 마음속에 그려졌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기지개센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아니, 애당초 내가 하는 모든 활동을 함구한다. 어차피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뻔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두 마디나 할까 싶을 정도로 평소에는 대화를 하지 않던 아버지가 하루는 내 방에 불쑥 들어와 말을 건넸다.
"요즘 뭐 하고 있냐?"
아버지는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어딘가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내가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나 보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행동에 나는 말문이 막힌 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빠가 이런 이야기 자주 안 하잖아. 요즘 뭐 하고 있냐고."
나는 아버지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 그냥 이것저것 하고 있다고 계속 에둘러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집요하게 날 추궁했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에 지쳐 당시 기지개센터에서 참여하고 있었던 일경험 사업이나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등 몇 가지 활동에 관해 말해 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한숨을 푹 쉬며 말씀하셨다.
"그런 거 하지 말고. 이력서를 써 이력서를."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둔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그런 거'라고 하는 아버지의 말은 내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너도 알고 있었잖아. 뭘 새삼스럽게 그래."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내가 쓸모없는 헛짓거리만 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아버지의 판단이 훨씬 이성적인 판단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구직시장에 뛰어드는 것. 하지만 그걸 몰라서 안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방 밖으로 나와 이것저것 해본 지 시간이 꽤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도 없고 두렵다. 날 써줄 곳이 있을까? 가진 거라곤 대학 졸업장 하나뿐인데. 게다가 무얼 해야 할지도 아직 모르겠고,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대하고 평가받는 자리에 서는 건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아봐야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알겠다는 말만 연거푸 내뱉고는 맥이 빠져 한숨을 푹 쉬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나는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 실패자가 된 느낌, 내가 하는 노력은 쓸모없는 노력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부러웠다. 사례를 발표하는 어머님은 은둔에 들어간 자녀를 더 잘 이해해 보기 위해 만학도로 가정상담학과에 입학했다고 하셨다. 더 힘든 환경에서 어렵게 살아오신 분이, 훨씬 풍족한 환경에서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자녀를 이해해 보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1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같이 온 일행에게 물었다.
"혹시 아까 부모 교육 사례 발표할 때 있잖아요."
"네."
"그 자제분이 왜 은둔했을지 짐작되는 거 있으셨나요?"
"네! 어휴~"
마음이 통했는지 함께 온 일행도 웃으며 바로 맞장구를 쳤다. 나와 마찬가지로 오랜 은둔을 겪었던 사람이기에 무언가 통한 게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나마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일행과 함께 다시 회장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