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청년 지원정책 포럼에 다녀오다 (2)
2부에서는 분야별 전문가들의 패널토의 및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우선 정책적으로는 고립·은둔이 단순히 특정 청년 집단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생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개인의 기질뿐 아니라 가정환경이나 학교 생활 등의 성장 배경 또한 고립·은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그 과정에서 부정적 경험이 고립·은둔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부정적 경험으로 인해 고립이 발생하면 그것이 청년기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고, 이것이 장기화될수록 고립이 심화된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생애 주기별로 담당 행정부서가 달라져 정책 연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통합적으로 관장하면서 예방적 접근이 가능한 체계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정신건강의학적인 차원에서는 자조 모임 활성화 등을 통해 사회 기술 연마를 돕는 단기적 접근과 건강한 가족 관계 형성을 돕는 중장기적 대책이 나왔다. 그리고 고립·은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고려하여 고립감이 깊은 은둔형 청년들에겐 정서나 심리영역 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활력이 있는 활동형 고립군에는 취업 및 진로 관련 프로그램 제공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제언이 이어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전 국민이 자가격리나 사회적 거리 두기를 경험하게 되었고 의도치 않게 우린 모두 고립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고립을 겪으며 관계가 끊어졌을 때의 고통에 대해선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고립·은둔청년은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문제 집단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인식 구조도 복잡한 측면이 있었다. 기성세대는 고립·은둔 문제에 별 관심도 없을뿐더러 공감하지도 못하는 편이라 그들을 지원하는 정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청년세대는 상대적으로 공감하는 반응이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 등 정책 설계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매우 많은 것으로 보였다.
청년들의 고립·은둔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체들은 저마다 다른 청사진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효과적인 접근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견을 조율하고, 큰 그림을 재정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되며 패널토의는 마무리되었다.
패널토의를 보며 든 생각은 고립·은둔청년문제가 매우 입체적이면서도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그냥 어디든 취업시키면 다 해결되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고립의 원인부터 결과까지 나타나는 다양한 스펙트럼, 고립에 대한 세간의 인식, 해결책의 다양성이나 지속 가능성 등 고려해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편으론 고립·은둔청년을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해 보려 노력하고, 또 진정으로 해결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내가 은둔 생활을 하던 시절 가장 바라 마지않았던 건 살든 죽든 은둔 생활을 청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건 두려웠고 그렇다고 죽자니 그건 더 두려웠다. 혼자서 대체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와중, 내게 내려온 동아줄이 기지개센터였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지개 사업에 참여했었다.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려보며 복잡한 기분으로 홀을 나왔다. 다뤄진 내용은 너무나 값지고 풍족했지만, 고립·은둔청년들이, 그리고 나 또한 그들 중 한 사람으로서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어떤 메시지를 말해야 할지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문득 기지개센터에서 함께 일경험 활동을 했던 동료 청년이 구직 상담 중 들었던, 그리 달갑지 않은 이야기를 내게 전해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센터 활동이 고립 상황을 극복하려는 긍정적 노력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걸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에서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센터에서 활동한 내용을 자소서나 포트폴리오에 녹여내는 것은 다소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앞이 깜깜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냥 밖으로 나오는 것도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산 넘어 산이구나 싶었다. 내가 다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나아가 세상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죽음이 아니라 삶을 선택했다면, 결국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고립·은둔청년들만의 유토피아라도 만들 것이 아니라면 다시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애써 뿌리치고, 뒤처져있다는 불안감을 다스리려 작은 노력을 계속 쌓아 올렸다. 언젠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한걸음한걸음,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걸어가고 있다.
기지개센터 센터장님이 한·일 국제 토론회와 기지개센터 포럼에서 일관적으로 언급했던 이야기가 있다. 고립·은둔청년을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수동적인 존재로 보지 말고, 스스로 미래를 설계해 나갈 역량을 갖춘 능동적인 주체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지개센터에서 일경험 활동을 하며 만난 고립·은둔청년들은 편견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조금 자신감 없고 위축된 모습이긴 했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리고 그 평가가 너무 가혹하지 않고 격려받을 수만 있다면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의욕이 너무 넘쳐서 매니저가 뜯어말려야 할 정도로.
포럼에 다녀오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작은 꿈이 생겼다. 내 글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용기가 되었으면, 그리고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이 세상에는 성장한 경험으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써나갈 글이 외로운 이들과 세상을 잇는 작은 다리가 되어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