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에 건네는 위로

by 고민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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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내가 이용하게 된 화원종합사회복지관에서 20주년 행사가 열렸다.


원래 작년까지는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의 모든 프로그램을 중앙 기지개센터에서 진행했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청년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올해부터는 지역별로 권역 센터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배정된 권역 센터는 화원종합사회복지관이었다.

보통 복지가 필요한 대상이라고 한다면 노년층이나 어린아이들이 주로 거론되지 청년이 복지 대상자로 여겨지진 않는다. 그래서 청년이 복지관을 이용한다는 건 아직까진 매우 생소한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청년들의 고립·은둔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새로운 취약 계층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에 발맞춰 최근에는 복지관에서도 청년들을 위한 자리가 어느 정도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굳이 참여해야 할까 싶었다. 봉사활동 시간이 지급된다고는 해도 그걸 어딘가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나가봐야 귀찮은 일만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지만, 한편으론 이런 거라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침대에 누워 자는 것 말고 뭐가 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갈 핑계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참여를 결심했다.

기지개센터 청년들은 청년 부스라는 전용 공간을 운영하게 되었다. 나는 사전 기획 회의에는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아이템을 준비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낼 기회가 없었다. 사전 회의가 끝난 뒤 전달받은 내용은 양말목을 활용한 티코스터를 만들기였다. 생판 처음 들어보는 티코스터라는 건 대체 뭘까 싶어 찾아보니 물이 서리지 않게 찻잔을 받치는 물건이라고 한다. 거기에 더해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네잎클로버 키링구상해 두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KakaoTalk_20251002_213837055.jpg 행사 전 연습하는 차원에서 미리 만들어본 티코스터와 네잎클로버 키링. 처음 만든 거라 그런지 모양이 예쁘게 잡히진 않았다.


행사 며칠 전, 담당 복지사님께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지역 주민 분들이 많이 오시겠죠?"

"네. 아마 어르신들이랑 아이들이 주로 참여할 것 같아요. 우리가 준비한 아이템을 생각하면 특히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 싶네요."


나는 사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대체 왜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걸 좋아하는 걸까.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신나서 소리를 질러대는 것 같다. 내가 유독 예민해서 그런 건지 귀를 찢어놓는 듯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속으로 "감자야 너는 진짜 절대 애 낳으면 안 되겠다." 하는 말을 되뇌곤 한다.

어쨌든 복지사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참여를 결심했으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스러운 마음 또한 커졌다. 내가 아이들을 견딜 수 있을까.




행사 당일. 나는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복지관에 도착했다. 사람이 너무 많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걱정한 만큼 많진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자리를 잡고 안내를 돕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이가 멀리서 쭈뼛거리며 부스로 다가왔다. 나는 순간 반말을 할까 존댓말을 할까 고민했지만, 아이가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 존댓말로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친구 이거 해보고 싶어요?"


나는 부스에 다가와 미리 만들어 놓은 샘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라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티코스터랑 네잎클로버를 만들고 있어요. 어떤 거 해보고 싶어요?"


아이는 티코스터를 집어 들었다.


"이거 만들어보고 싶어요?"

"네..."

"조금 어렵긴 한데 그럼 같이 한 번 해볼게요."


나는 티코스터 틀을 건네며 아이에게 말했다.


"먼저 틀에 양말목을 걸어줄 거예요."


티코스터를 엮기 위해서는 틀에 총 20개의 양말목을 걸어야 한다. 나는 양말목을 2개 정도 집어 들어 틀에 시범 삼아 걸어 보였다.


"자 이렇게 걸면 돼요. 이렇게 끝부분까지 모두 줄을 걸어볼까요? 천천히 해보고 혹시 실수해도 괜찮아요. 다시 하면 되니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틀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색의 양말목을 골라 틀에 걸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서툰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잠시 뒤, 아이는 틀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다 했어요."

"그럼 한 번 볼까요?"


나는 아이에게서 틀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서툰 손길로 삐뚤빼뚤하게 양말목을 걸어놓은 티코스터 틀은 정돈된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엮어내기에 부족함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자 그럼 이제 이걸 엮어볼 건데, 같이 해볼게요."


나는 안내를 위해 엮어내지 않고 틀에 양말목만 걸어서 준비해 둔 샘플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줄을 하나 꺼내고."

"하나 꺼내고..."


아이는 나를 따라 하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다음 줄을 꺼내서 먼저 꺼낸 줄에 끼워 넣어요."


나는 아이가 잘 볼 수 있도록 들고 있는 틀을 최대한 가까이 보여주며 말했다. 아이는 잠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금방 이해하고는 내가 설명을 다 마치기도 전에 양말목을 엮어내기 시작했다.

양말목을 엮는 건 성인인 내가 해도 꽤 손아귀 힘이 필요한 일이다. 특히 마무리에 가까워질수록 남은 부분이 헐렁해져서 실수를 하기 쉬운데, 그때 실수를 하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양말목을 엮던 아이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끝부분에 가까워지면서 남은 부분이 헐렁해졌고 이내 틀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도와줘야겠다 싶었지만, 동시에 그냥 도와주는 건 아이에게서 무언가를 뺏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아이에게 물었다.


"마지막 부분이 조금 힘들 수 있는데, 직접 해보고 싶어요. 아니면 도와줄까요?"


아이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내게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며 틀을 건넸다. 나는 남은 부분을 마무리 한 뒤, 펼쳐서 모양을 한 번 잡고 완성된 티코스터를 아이에게 건넸다.


"완성. 처음 하는 데도 잘 만들었다. 색깔이 정말 예쁘네요."


아이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티코스터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어딘가로 떠났다.

첫 방문객을 보내고 부스에는 어르신부터 아이들까지 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부스 운영이 지루하면 시간을 어떻게 때울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고 복지사님이 가져다준 간식을 먹는 것도 잊은 채 참여자들을 안내하고 샘플을 만들길 수 시간.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의 다른 부스는 이미 시간이 다 되어 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기념사진 촬영을 한 뒤 집으로 걸어오는 길. 나는 생각에 잠겼다.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있었다. 만드는 건 너무 어려워했지만 물건은 갖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반면 본인이 직접 완성해보고 싶다며 도움조차 거절하고는 끝까지 스스로 해내려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마주해야 하는 이 행사가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부스를 운영하는 내 모습은 이질감이 들 정도로 어린 참여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중 문득 어린 시절 나를 대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내게 아버지란 '양가감정' 그 자체였다. 나는 늘 아버지와 더 친해지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바람이 무색하게도 아버지는 단순히 날 밀어내는 걸 넘어 매사 비난으로 날 대했다.


버지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학교 숙제를 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겨 도움을 청하면 아버지는 늘 "너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해야지. 하나부터 열까지 아빠가 다 알려주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라고 일침을 놓았다. 선풍기를 청소할 때면 어디서부터 분해해야 할지 살피길 무섭게 "할 줄 몰라? 거 봐라 못하잖아."라는 말이 뒤통수에 날아와 꽂혔다. 함께 책상을 옮기다 손발이 잘 맞지 않아 일이 더뎌지면 "너 어디 나가서 이런 식으로 일하면 욕 바자기로 먹어. 큰일이다 정말."이라며 한숨을 내쉬셨다. 특히 아버지는 의존하는 걸 매우 나약한 행동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내가 아버지에게 가장 자주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넌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큰일이다."였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한편으론 끝없는 비난에 상처 입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내게 더 큰 시련이 찾아온 건 사춘기 때였다. 사춘기가 오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고 나는 가뜩이나 예민한 시기에 비난까지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부모님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그건 너무나도 요원한 바람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고사'라 불리는 시험을 치르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내게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한편, 처음이니까 많은 걸 바라지 않을 테니 무조건 평균 90점만 넘기자는 다소 해괴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말에 나름대로 분투해 보았지만 부족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중학교 입학 후 첫 시험에서 내가 받아 든 점수는 평균 85점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면서 받을 수 있는 성적도 아니었다. 부분적으로는 잘 한 과목도 분명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칭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내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첫 시험이니까 봐주는 거야. 기말고사도 망치면 안 된다."


그냥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걸 넘어 아예 망친 거라는 아버지의 반응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그래도 잘한 부분도 있지 않냐며 항변해 보았지만 아버지의 대답은 차가웠다.


"아빠가 너한테 돈 들여서 공부방 보내줬으니까 그 정도는 당연히 나와야 하는 거고. 아빠가 딱 돈 쓴 만큼만 나온 거잖아. 네가 한 노력은 하나도 없는 거야."


눈에 차진 않았겠지만 나름대로 노력했던 부분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걸 전혀 인정해주지 않았다. 실망감에 나는 더욱 의욕을 잃었고 그다음 시험인 기말고사의 평균 점수는 90점은 고사하고 70점대로 추락했다.

점수가 오르기는커녕 곤두박질쳐버리자 부모님은 당연히 노발대발했다.


"점수가 올라도 부족한데 어떻게 더 떨어져? 정신머리가 있는 거야?"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맹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내가 더 아득하게 느낀 건 그다음에 나온 아버지의 말이었다.


"제발 전교 1등 한 번만 하자. 아빠 소원이야. 아빠가 너 힘들게 키우면서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데 바라는 건 딱 하나잖아. 그거 하나를 못해줘?"


해달라는 걸 다 해줬다는 말에는 나도 할 이야기가 많다.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에게 나는 정말 웬만큼 필요한 게 아니고서는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유약하기 짝이 없다고 하는 아버지의 비난을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간혹 도저히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생겨 무언가를 부탁하면 아버지는 "원래 다른 집 애들은 다 이런 거 혼자 하는데 아빠니까 특별히 해주는 거야."라고 온갖 생색을 내곤 했다.

어쨌든 나는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듣고 아예 마음이 꺾여 버렸다. 당장 눈앞에 있는 목표도 버거웠는데 아버지는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이르지 못하는 한 나는 영원히 실패자였다. 만약 내가 당장 평균 90점을 넘긴다고 해도 그다음 시험에 혹여나 점수가 다시 떨어진다면? 나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여전히 실패한 사람으로 남는다.


아주 엄격한 조건을 내걸며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라는 가혹한 요구와, 그런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내게 가차 없이 비난을 일삼는 아버지는 학창 시절 내게 큰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주변 어른들에게 "아빠가 날 싫어하는 것 같아요."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아빠가 너를 왜 싫어해. 부모님은 자식을 무조건 사랑하는 거야. 부모님 마음이란 그런 거란다."


하지만 도저히 그런 말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차피 좋은 대답을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몇 번은 아버지에게 "아빠는 내가 싫은데 억지로 데리고 사는 거야?"라며 직접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아빠가 널 싫어하면 입혀주고 재워주면서 너랑 같이 살까? 부모니까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이야기인 거야. 너한테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사람들이 너 잘못되면 책임질 것 같아?"라며 내 의구심을 일축했다.


비난이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견디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은 점점 멀어져 갔다. 늘 비난을 일삼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내게 좌절감만 안길 뿐이었다. 비난을 들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무얼 하든 쉽게 조급해지고 동요하는 성격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흠이 잡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뒤틀린 완벽주의를 키워갔다.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라는 가치관 아래, 세상은 나로 하여금 괴로움만 주는 아버지를 의심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 세상 모든 게 날 괴롭게 만들었고 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나는 세상을 등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들을 떠올리자, 그제야 아이들을 대했던 내 태도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아이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성실하게 부스를 운영하고자 하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했던 이야기는 어린 날의 내가 아버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자 이렇게 걸면 돼요. 이렇게 끝부분까지 모두 줄을 걸어볼까요? 천천히 해보고 혹시 실수해도 괜찮아요. 다시 하면 되니까."

"할 줄 몰라? 거 봐라 못하잖아."

"자 그럼 이제 이걸 엮어볼 건데, 같이 해볼게요."

"너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해야지. 하나부터 열까지 아빠가 다 알려주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마지막 부분이 조금 힘들 수 있는데, 직접 해보고 싶어요. 아니면 도와줄까요?"

"넌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큰일이다."

"완성. 처음 하는 데도 잘 만들었다. 색깔이 정말 예쁘네요."

"첫 시험이니까 봐주는 거야. 기말고사도 망치면 안 된다."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격려받고 싶었다. 서툴다는 이유로 수치심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되지 않아도 비난받을 걱정 없이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를 해보고 싶었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거라 생각하며 했던 행동들은 사실 그 어린 시절 내가 간절히 원했지만 받을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부스를 찾아온 아이들에게 내가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너무 바쁜 나머지 충분히 신경 써주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칭찬해주고 싶었지만 낯 뜨거운 마음에 그렇게 하지 못한 순간도 있었다. 아이들이 물건을 완성했는지 그러지 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물건을 가져가든, 나는 아이들이 부스에서 한 경험을 실패라 생각하지 않길 바랐다.


마음 한편에서 웅크리고 있던 상처받은 아이는 시간을 거슬러 찾아온 위로에 조금씩 고개를 들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속 깊이 들어온 손길을 여전히 의심 가득한 눈으로 흘겨보고 있었지만, 모든 걸 의심했던 그 서러운 마음속에서 믿음이라는 씨앗은 다시 한번 싹을 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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