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가족

은둔도 가족력 같은 게 있는 걸까?

by 고민감자

긴 추석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첫 주. 문득 가족이란 뭘까 하는 청승맞은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가족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이젠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는 안방에서 TV를 보고, 어머니는 거실에서 스마트폰 앱으로 혼자 고스톱을 치신다. 나는 내 방에서 게임을 하고 동생은 자기 방에서 SNS로 친구들과 소통한다. 얼핏 보면 저게 가족인가 싶지만, 우리 가족에겐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명절을 정말 좋아했다. 시골에 내려가 친척, 사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건 내게 그 무엇보다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시골에 가지 않고 집에서는 가족들끼리 대화조차 잘 나누지 않는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고립·은둔 문제는 대부분 가족 문제를 동반한다. 고립되는 원인 그 자체가 가족인 경우도 있고, 다른 원인이 있는데 가족이 그 문제를 심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가족 치료 분야에서 흔히 역기능 가정이라 불리는 이러한 부정적 가정환경은 서로의 신체적, 정서적 욕구를 저해하는 소통 방식을 가지며, 고립을 겪는 가족 구성원에게 적절한 지지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문제를 악화시킨다.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이 지냈던 가정환경도 이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가족 중 처음 은둔 생활에 들어선 건 아버지였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영세하게 자영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일거리가 없다고 하시며 출근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출근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매우 달갑지 않았는데, 그건 아버지는 온갖 비난을 퍼부으며 가족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족 중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았다. 어머니와는 부부싸움을 일삼았고 나와 동생에겐 온갖 불만을 쏟아내곤 했다. 특히 당시 내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부모님의 부부싸움이었다. 거의 주간 행사나 다름없을 정도로 부모님은 매주 싸웠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부부싸움 중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가장 자주 취한 태도는 전업 주부에 대한 무시와 냉대였다.


"집에서 하는 건 없는 주제에 왜 이렇게 사사건건 네 마음대로 하려고 하냐?"

"불만이면 네가 나가서 돈 벌어와. 나도 편하게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싶어."


아버지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건 어머니와 마주하는 시간도 길어지는 걸 의미했고 자연스레 부부싸움도 더 잦아졌다. 특히 아버지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술과 함께 했다. 술에 취하면 아버지의 비난도 더욱 과격해졌고 행동도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취객에게 멱살을 잡히면서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대상이 주는 공포로부터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 술에 취한 아버지가 바로 가족들에게 그런 공포를 주는 존재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시절 가장 싫었던 감각은 하교하고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밤새 술을 마신 아버지의 숨결이 만들어낸 알코올 냄새였다.

게다가 아버지는 생활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서야 하는 상황을 최대한 미루고 싶으셨는지 쉴 새 없이 돈을 아껴 쓰라며 가족들을 쪼아댔다.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찾을 때 조금이라도 지체되는 것 같으면 "전기세 아깝게 냉장고를 왜 열고 있어!"라며 일갈하곤 하셨고 방 불을 끄는 걸 잊을 때면 "돈 네가 벌어올래? 왜 불을 안 끄는 거야?"라고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심지어 수도요금이 많이 나올 수 있다며 여러 번 볼일을 보고 변기물을 내리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연스레 어머니, 나, 그리고 동생까지 그 누구도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아버지는 "내가 이 가정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있는데 너희는 왜 날 따돌리냐."라고 말하며 "이러니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는 해괴한 이야기와 함께 더 많은 술을 들이켰고 더더욱 가족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때 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돌이켜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며 가족들을 못살게 굴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은둔 상태나 다름없었다.



두 번째로 은둔 생활에 들어선 건 내 여동생이었다. 발단은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이 방학 중 친구들과 피서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겪은 사고였다.

당시 나는 군복무 중이었는데 휴가를 나와보니 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어디 놀러 갔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우연히 식탁 위에 놓인 진료 기록을 보게 되었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생은 친구 3명과 함께 피서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같이 놀러 간 친구 중 한 명의 부모님 차를 얻어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교통사고가 났다. 2명의 친구는 명을 달리했지만, 천운이었는지 동생은 한 친구와 함께 살아남았다. 나중에 동생의 말을 들어보니 차에서 자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도로 위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아마 차량이 충돌하면서 차 밖으로 튕겨져 나간 것 같았다. 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 자세히 묻지는 못했지만, 동생이 사고를 당한 것도 모자라 친구의 죽음까지 볼 수밖에 없었다는 건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동생은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기에 한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다. 1년여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내가 군대를 전역한 그 순간까지도 동생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온 힘을 다해 동생을 보살폈지만, 그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전역하고 집에 돌아온 내가 마주한 건 방에 틀어박혀 은둔에 들어간 동생과 부모님의 갈등이었다.

동생을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는 극과 극이었다. 어머니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생을 감싸주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동생을 대신해 매일 담임 선생님께 전화해 죄송하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선생님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아도 좋으니 일단 동생이 학교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매번 당부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의 사정과 담임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동생은 최소한의 출석처리가 되어 유급까지 가지 않고 제때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반대쪽 극단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동생이 학교에 가지 않는 게 부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불속에 숨어있는 동생에게 아버지는 아침부터 술에 취한 채 꽥꽥 소리를 질렀다.


"학교 가! 어딜 아빠한테 이겨먹으려고 그래? 아빠한테 져!"


나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볼 때면 양쪽 모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중간이 없는 걸까. 어머니는 너무 과보호하는 것 같았고 반대로 아버지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가진 동생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동생은 은둔 생활을 지속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오랜 시간 밖으로 나오지 않던 동생은 심지어 제 아버지처럼 술버릇도 좋지 않았다. 동생은 한 번 술잔을 잡으면 몸을 가눌 수 없을 때까지 술을 들이켰고 그대로 혼자 두면 넘어져 얼굴에 흉터를 만드는 건 예삿일이었다.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나는 동생이 안타까운 사고를 겪은 건 사실이지만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은둔의 그림자가 나에게까지 찾아올 거라고는....




얼어붙은 시간을 지나 여전히 기억 속에는 괴로웠던 흔적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다. 그래도 지금은 다들 어느 정도 은둔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했다. 아버지는 새로운 곳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셨고 술도 끊으셨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으려 했던 동생은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을 하기 시작했고 아르바이트를 거쳐 직장도 갖게 되었다. 나는 아직 자리를 잡진 못했지만 작게나마 변화를 시작해 보려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에 참여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글을 쓰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있다.


하지만 은둔은 우리 가족을 뿔뿔이 찢어놓았다. 긴 추석 연휴에 한 지붕 아래 있으면서도 우리 가족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분명 다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겠지만 마음 한편에 묻어둔 채 아버지는 안방, 어머니는 거실, 나와 동생은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가족이란 건 대체 뭘까. 각자의 세상에서 우리 가족들은 다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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