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따라서

일단 가고는 있어.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by 고민감자

"에휴 하기 싫어."


날이 추워지니까 더욱 이불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계획대로라면 오늘 러닝을 해야 하는데 너무 귀찮다.


"딱 오늘 하루만 쉴까?"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되뇌어 보지만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나는 알고 있다. 미루고 미루다 결국 할 거잖아.


추석의 후폭풍이 2주는 지속되었던 것 같다. 원래는 93~94kg을 유지하던 몸무게가 추석 연휴가 끝난 시점엔 무려 98kg까지 불어났다. 어떻게 뺀 살인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한 달 전 추석을 코앞에 둔 시점. 계획했던 굵직한 일들이 거의 마무리되면서 명절을 핑계로 일주일만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절반 정도는 연휴 핑계를 대고 놀고 싶은 마음, 나머지 절반은 거하게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앞으로의 계획도 더욱 탄력을 받아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었다. 그런데 웬 걸. 연휴가 끝나자 탄력은커녕 오히려 더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냥 놀고 싶다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완전히 늘어진 고무줄처럼 노는 것에조차 흥미를 잃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불속에 누워만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빛바랜 시간 속에서 잊힌 듯했지만, 여전히 익숙한 은둔 생활을 하던 시절의 그 느낌이었다.


연휴를 핑계로 하고 있던 글쓰기나 자격증 공부는 잠시 내려놓았지만,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게 하나 있다. 바로 운동이다. 어느덧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 지도 3년이 훌쩍 넘었고 러닝은 1년을 조금 넘겼다. 운동을 시작했을 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더라. 운동하러 나가는 건 정말 익숙해지지 않고 매 순간 귀찮다. 그저 오래 하다 보니 관성이라도 생긴 건지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일정대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해서 한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투덜대며 집을 나섰다.




내 삶이 가장 어두운 심연 속에 잠겨 있었던 시절. 나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방 안에 몸을 숨겼다.


매일 밤 제발 내일은 눈을 뜨지 못하길 바라며 잠들었지만, 눈을 뜨면 어김없이 창문을 때리는 햇살이 반겨주던 지긋지긋한 나날들. 부모님과 동생이 모두 집을 비울 때면 나는 조심스레 방 밖으로 나와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떨어지면 아플까. 멈춘 듯한 시간 속에서 의식은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과 삶을 포기할 용기조차 없다는 자괴감의 굴레 속에 갇혀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내 모습은 달라졌을까. 깨진 기억의 파편으로 스스로를 찌르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고통을 여의기 위해 가장 좋은 건 삶을 끝내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삶이 소중하진 않아도 이 삶에 얽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고통에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밖으로 나가는 건 두려웠다. 특히 사람이 너무 무서웠다. 계산원과 한두 마디 섞는 것조차 무서워 마트도 가지 못하는 내가 당장 나간다고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일단 무작정 집을 나와 걷는 것이었다. 딱히 갈 곳은 없었지만 작은 크로스백에 안경집과 핸드폰, 물 한 병 만을 들고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온 것까진 좋았으나 문제는 130kg까지 살이 찐 육중한 몸이었다. 비대해진 몸을 이끌고서는 걷는 것조차 상당한 무리가 따랐다. 1~2시간 정도만 걸어도 무릎이 아팠고 그렇게 밖에 나갔다 오면 며칠은 근육통으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명확한 목표 없이 하루는 나가서 걷고, 이삼일을 침대에 누워 앓으며 수 달을 보냈다. 무의미하게 몸을 혹사시키며 여느 때처럼 침대에 누워 근육통으로 끙끙대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군 복무 시절 함께 일했던 군무원 아저씨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했는데 우리 부대 보급반에는 함께 일하는 조리 군무원이 한 분 계셨다. 그냥 병사들에게 시켜도 되는 사소한 일까지 솔선수범하시는, 군 복무 시절 몇 안 되는 내가 정말 존경했던 분이었다. 그분은 평소에 내게 살을 빼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군대에서 워낙 스트레스가 많았기에 먹는 걸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어 당시에는 그분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전역할 때 마지막으로 그분에게 받은 손편지에는 다시 한번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살이 찌면 건강에 좋지 않다거나 보기 흉하다는 흔한 이유가 아니었다. 편지에는 비대한 몸 때문에 남들 앞에서 위축되는 내 모습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편지를 떠올리자 나는 그제야 정처 없이 걷는 것을 멈췄다. 빛 한 점 없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동동 떠있던 배가 북두칠성이라도 발견한 양, 나는 1년에 10만 원이면 이용할 수 있는 아파트 헬스장에 등록했다. 이곳에 가면 무엇이든 나올 거라는, 아니, 나왔으면 좋겠다는 근거 없는 일말의 희망만을 품고서.

살을 빼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건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살기로 했다면 사람이 무섭다는 이유로 계속 숨어있고 싶지 않았다. 걷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근육통이 따랐지만 어떤 날은 그저 집에 있기 싫어서, 어떤 날은 부모님의 눈치가 보여 무언가 하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 일주일을 쉬더라도 중간에 멈추는 일 없이 꼬박꼬박 헬스장에 나갔다.

당장 나가서 무언가를 하는 건 너무 두려웠기에, 나는 사람을 대하지 않고도 노력을 쏟을 만한 게 있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했다. 사람을 피할 수 있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고는 운동뿐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내가 밖에 나갈 수 없는 이유는 대인 관계에 대한 두려움 아니던가. 운동을 하고 살을 빼면 분명 남들 앞에서 조금 더 당당한 모습으로 설 수 있을 거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걷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내가 마주한 난관은 단순히 몸이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1년 정도 되었을 무렵. 나를 알아보는 아파트 주민 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간에 꾸준히 헬스장을 나가다 보니 매번 같은 사람들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꽤 오랫동안 루틴을 유지하며 변화를 만들어 나갔던 게 그분들에겐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너 진짜 인간승리다. 대단해."

"진짜 멋있어졌어. 지금 정말 보기 좋아."


내 얼굴을 익힌 어르신들은 나를 볼 때마다 좋은 이야기를 건네셨다. 물론 감사한 말씀들이었지만, 사람 대하는 게 두려워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인 헬스를 선택한 내게 그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대인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그 정도였다. 적대감 없이 날 대하려는 게 분명한 사람들에게조차 불편함을 느꼈다. 기나긴 은둔 생활로 나는 칭찬조차 제대로 받을 줄 몰랐다. 그래서 그런 주민분들을 피하려고 일부러 날 알아보는 분들이 헬스장에 나오는 시간대를 피해 운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2년 여에 걸쳐 35kg 정도를 감량했다. 95kg이라는 몸무게는 여전히 다이어트가 필요한 몸무게이긴 했지만, 키가 조금 큰 편이라 어느 정도 뚱뚱해 보이는 모습은 벗어난 것 같았다. 덕분에 전보다는 당당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말을 건네면 편치 않은 미소라도 지을 수 있게 되었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마트에도 나갔다.

하지만 은둔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구직. 그건 여전히 두려웠다. 기나긴 공백기. 대체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거지. 공백기에 뭐 했냐고 물어보면 대체 뭐라고 답해야 하는 걸까. 나는 무얼 잘할 수 있고 뭘 해야 하는 거지? 이제 와서 노력한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나? 어차피 다 부질없는 노력이라면 이제 와서 굳이 내가 뭔가 더 하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나? 온갖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주저앉을 위기에 처한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웹서핑 중 발견한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이었다.




러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몸무게를 다시 재 보았다. 94kg. 수분 손실을 감안하면 완전히는 아니지만 꽤 많이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모른다.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일지도 모르고. 은둔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으면서 내가 좋아하고, 강점을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보다 많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정말 나의 그런 강점들을 살릴 기회가 내게 주어지긴 할까.


나는 더 이상 멈춰 있지 않다. 운동을 비롯해 은둔에서 벗어나려 만들었던 크고 작은 루틴들은 내 삶이라는 배가 멈추지 않도록 계속 노를 저어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저 별을 따라가면 정말 뭍이 나오긴 하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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