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인턴 기자로 활동했던 아는 형에게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주제는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즉, 소위 말하는 "아싸"였다. 내가 대학 생활을 했던 2010년대 초중반은 인싸와 아싸에 대한 담론이 그야말로 대학가를 휩쓸던 시기였다. 혼밥, 혼술과 같은 말이 매체에 자주 등장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관련 콘텐츠가 수도 없이 쏟아졌다.
그 형이 내게 아무 이유 없이 인터뷰를 요청한 건 아니었다. 나는 인간관계가 황폐화된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보단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 형은 나의 그런 성향을 잘 알고 있었고, 기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내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사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하나.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떤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던 기억은 있다.
"저는 반반인 것 같아요. 자발적 아싸이기도 하고 비자발적 아싸이기도 하죠.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실제로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에요."
은둔 생활에 들어가기 전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 조금 나쁘게 표현하면 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상의 깊은 관계였다. 나는 태어나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깊은 관계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애초에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을뿐더러 누군가 너무 깊이 내 삶에 들어오면 반가움보다는 부담을 더 크게 느꼈다.
이런 성향이 은둔에 들어서는 데 큰 영향을 준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조금씩 공유하면서 친해지는 게 깊은 관계라면, 나는 그런 게 거의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나와 타인의 삶을 철저히 경계 짓고 누군가 그 선을 넘어오려 하면 무시와 냉대로 날을 세우는 것.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는 깊은 관계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사실 그런 욕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홀로 시간을 보내다가도 가끔은 정말 깊은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신뢰하면서 내 이야기를 꺼낼 일은 없을 거란 걸.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매우 위험한 행동처럼 느껴지고, 타인을 진정으로 믿는 것에는 망설임이 크다.
나는 왜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걸까.
"야, 너만 안 먹었냐?"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여기서 밥 먹은 사람 아무도 없어. 다 종일 굶고 대청소하고 있는데 뭘 너만 안 먹은 것처럼 유난이야."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뱃속에선 여전히 꼬르륵 소리가 들렸지만,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내 마음처럼 까맣게 변해버린 걸레를 벅벅 문질렀다.
"괜히 말했다. 그냥 말 걸지 말걸."
그랬구나. 나만 안 먹은 줄 알았는데 다들 종일 굶고 있었구나.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근데 그렇다고 해도 종일 굶어서 배고프다고 말한 게 그렇게 이기적인 건가? 이렇게까지 기분 나쁜 말을 들어야 할 정도로 내가 나만 생각한 걸까?
걸레를 비틀어 물기를 짜내고 밖으로 나왔다. 서운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걸 드러내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걸레를 널고 뒷정리를 하는 중, 그런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어머니는 말했다.
"거의 다 끝났으니까 너 먼저 들어가서 빨리 씻어. 다 씻으면 밥 먹게."
대청소를 하며 몸도 피곤했는데 어머니의 날 선 반응에 마음까지 답답해졌던 나는 일단 뭐가 되었든 상황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샤워기가 물을 뿜어내기 무섭게 동생에게 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오빠는 어쩌면 저렇게 인정머리가 없냐. 다른 가족들 뻔히 뒷정리하고 있는 거 보이는데 먼저 씻으란다고 진짜로 지 혼자 쏙 들어가서 씻냐."
서운했던 마음이 이내 울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샤워 시간 겹치지 않게 먼저 씻으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던 건가? 내가 그냥 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같이 청소도 했는데 왜 저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어머니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엄마가 먼저 들어가서 씻으래서 씻은 건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어이구 그게 들렸어? 귀도 밝네."
"내가 더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말을 해주면 되잖아. 먼저 씻으라고 해놓고 들어가니까 왜 뒤에다 대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데?"
"아주 지 엄마를 잡아먹으려고 하네. 너한테는 진짜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 하겠다."
묻는 것에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어머니. 나는 대답을 듣는 걸 포기하고 방에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근 뒤 이불을 뒤집어썼다.
잠시 뒤.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렸다.
"밥 먹자. 밥 안 먹어?"
"안 먹어."
"왜."
"안 먹고 싶어."
"배 고프다며."
"안 고파."
"아깐 배 고프다고 했잖아."
"이젠 안 고파."
"그래도 먹어야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감정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해 말도 섞기 싫은데 왜 자꾸 말을 거는 걸까. 어떤 때는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더욱 화가 난다. 나는 잔뜩 짜증이 나서 소리를 꽥 질렀다.
"안 먹는다고!!!"
"아이 깜짝아.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갑작스러운 내 반응에 깜짝 놀란 어머니. 어머니는 문 앞에서 몇 마디를 더 하다가 결국 포기하셨는지 점점 목소리가 멀어졌고 문 밖의 인기척도 사라졌다. 거실에서는 연신 어머니와 동생이 수다를 떠는소리, 발바닥이 바닥을 휩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식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의아해하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는 안 먹는대?"
"몰라. 왜 골이 나서 저러는 건지 참내. 벌써부터 이러는데 엄마 나이 들면 얼마나 구박하고 괄시할까. 무서워 죽겠다 아주."
나는 가슴을 옥죄는 듯한 답답함을 억누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 맺어 왔는지를 돌아볼 때면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고개를 든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그들을 믿지 못해 주저하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자꾸만 그 이유를 부모님과 좋은 감정으로 연결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기억에서 찾고 싶어진다. 모든 원인을 거기에 돌릴 수는 없겠지만 위로받지 못했던 그 감정들은 여전히 켜켜이 쌓여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있다.
현재는 부모님과 어느 정도 최악은 아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개선되었냐 묻는다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부모님을 대하는 노하우가 생긴 것에 가깝다. 몇 가지 원칙만 지킨다면 부모님과의 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지금의 난 내 일상을 부모님의 관심으로부터 철저히 분리하고, 부모님과 대화할 때에는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간혹 동요하는 순간도 있지만, 이젠 나를 수용해주지 않는 부모님을 탓하기보단 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앞선다.
긴 은둔 생활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성찰이었다. 세상과 단절되는 고통 속에서 깊숙이 숨어있던 내면을 마주하자, 그곳에는 내 부모님이 나를 대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는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내게 지지를 기대하며 다가와 줬던 사람들의 감정을 부정하고, 그들을 평가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그리고 그 모습을 마주하자 부모님이 내게 줬던 고통을 내가 똑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주고 있었다는 자괴감과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은둔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과 조금씩 연결되면서 내 곁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를 대하던 부모님, 그리고 과거의 나를 반면교사 삼아 사람을 대할 때 더욱 노력했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경청하고, 그들이 느낀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려 했다.
그런 노력을 지속하니 주변에서 타인의 마음을 잘 헤어리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온전히 그들을 위한 마음이었을까. 내가 지금 애쓰고 있는 게 사실 그런 걸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빈 껍데기의 공허한 노력은 아닐지, 혹은 어쩌면 할 줄도 모르는 공감을 그냥 하는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선물을 할 때 상대방이 무얼 원할까를 고민하기보단 내가 받고 싶은 걸 선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려 노력하지만, 사실 그건 내가 그토록 받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부당할까 두려운 마음에 그 누구에게도 손을 건네지 않고 있는 내 모습.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볼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지금 하는 노력이 앞으로 날 변화시킬 수는 있는 걸까.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내 감정이나 생각을 말하고 마음을 나누는 건 어떤 기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