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마음이 닿기를

2025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지킴이 양성교육 시민특강

by 고민감자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고립·은둔 시민특강에 다녀왔다.

특강이 열리는 곳에서는 익숙한 풍경도 여럿 보였다. 기지개센터에서는 몇몇 직원분들이 나와 리플릿을 나눠주고 있었고, 대기 시간 동안 나오는 영상에서도 기지개센터 청년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TV에서만 봤던 사람을 실제로 볼 수 있다니. 설렘을 안고 최대한 앞쪽 가운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자리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아마 자녀가, 혹은 주변 사람이 오늘 다룰 이야기와 관련된 문제를 겪고 있는 부모님들이겠지.


첫 시간은 안무서운회사 유승규 대표의 강연이었다. 고립·은둔과 관련해 민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자주 보던 사람이었기에 강연하는 모습이 꽤 익숙하게 느껴졌다.

유승규 대표는 고립·은둔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부분을 설명해 주었고 고립·은둔 자녀의 상태에 따라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간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었다. 고립 상태가 그리 심각하지 않은 초기에는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만성화된 고립·은둔을 겪게 되는데, 이는 고립·은둔이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고립·은둔은 단순히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다시 말해 관계 자본이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유승규 대표는 이들을 어떻게든 밖으로 끌어내 취업시킬 생각만 하는 건 문제를 너무 간단하게 여기는 것이라 지적했다. 용기를 내 밖에로 걸음을 뗀 청년들 중 상당수는 그런 일차원적 접근의 부작용으로 재고립을 겪는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나갔다가 더 큰 상처만 안고 돌아오는 것이다.

유승규 대표는 청년들의 고립·은둔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접근 방식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비유했다. 여행자를 눕혀보고 여행자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몸을 잘라버리고, 작으면 몸을 억지로 잡아 늘리려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쓸모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는 잣대가 너무나도 명확하고, 그 잣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낙오자가 되었다는 절망감을 맛봐야 한다. 다양성을 억압하고 모두가 획일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적응한 이들은 괜찮겠지만,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개인의 의지나 노력 문제로 여겨질 뿐이다.

그래서 고립을 겪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대안적 예시로 일본의 15분 일자리나, 치매 식당 등의 사례를 언급했다. 우리보다 앞서 히키코모리 문제로 고민했던 일본에서는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과도기적인 일자리를 만들었다. 긴 시간 세상에서 격리되었던 사람들이 일반적인 근무 스케줄을 소화해 내는 건 힘들기 때문에 시급이 아닌 분급을 지급하는 15분 일자리를 통해 서서히 사회에 복귀해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치매 식당은 경증 치매 환자들이 종업원으로 일하는 식당이다. 종업원들은 주문을 잊거나 착각하기 일쑤이고 손님들에게는 그런 사실이 미리 고지된다. 일반적인 식당이었다면 쏟아지는 컴플레인과 함께 망하기 딱 좋았겠지만, 치매 식당은 오히려 그런 부분이 아이덴티티처럼 자리 잡아 손님들이 음식을 바꾸어 먹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등 이색적인 식당이 되었다. 이처럼 사회에 융화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단순히 규격 외 취급하기보다, 조금 더 온정적이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큰 갈등 없이도 얼마든지 이들을 밖으로 인도할 수 있다 역설했다.


두 번째 강연은 오은영 박사의 강연이었다. 외모에서 억양까지 영상으로만 마주했던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니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더 크게 환호하는 것 같았다.

오은영 전문의는 수많은 금쪽이들을 보며 그 부모님들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이야기로 서론을 열었다. 교육, 혹은 양육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단순히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걸 넘어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에 대한 조금 더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키워드로 언급된 건 '공감'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선천적으로 측은지심을 가질 수 있게 태어난다. 교육은 경험과 관계없이 얻게 된 그런 마음을 더욱 개화하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는 자녀를 지켜보며 답답한 마음에 현장을 찾았을 부모님들께 위로를 전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어떻게든 밖으로 나서기 위해 치열한 내적 분투를 이어가고 있을 자녀들의 마음을 헤아려 줄 것을 당부했다.

고립·은둔에 빠지기 쉬운 생물학적 특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대체로 감각 자극을 예민하게 처리하는 사람들이 고립되기 쉬운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민하다는 말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많이 품고 있지만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좋을 수도, 어떤 상황에서는 나쁠 수도 있다. 다만 예민한 사람들은 외부 자극을 훨씬 민감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같은 자극에도 더욱 움츠러들 수 있다. 가령 예민한 아이는 상대방이 별생각 없이 말을 하더라도 미묘한 표정 변화나 달라지는 목소리 톤을 감지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우호적인 태도로 접근하지 않으면 외부 자극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관계를 피하려는 성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모님들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오은영 박사는 "너 언제까지고 부모랑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너 우리 죽으면 어떡할래?" 등, 자녀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압박감을 줄 수 있는 말은 그리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당부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아픔에 공감하고, 무너진 자기 효능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작은 시도라도 격려해 주는 게 중요하다 거듭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은둔에 이르는 과정에서 은둔한 사람이 어떤 마음일지까지 전체적으로 공감되는 게 많은 강연이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은둔하게 되었는지 스스로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살아오면서 늘 내게 힘들었던 건 인간관계였다. 누군가와 소통할 때면 미세하게 바뀌는 듯한 상대방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 변화에 너무 크게 영향을 받았다. 상대방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변하거나 목소리 톤이 바뀌면 "아 지금 이 사람 내가 한 이야기 마음에 안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은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합쳐져 사람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실제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불안감을 보루 삼아 사람을 피했다. 그리고 그게 은둔이라는 늪으로 들어서는 서막이었다.


강연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가 고립·은둔 문제를 당위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립·은둔을 마치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는 상태로 여기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원만하게 두루 잘 지내며 공부 열심히 하고, 20대에는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너무 늦지 않게 결혼하고, 출산하고, 부모님께 잘하고 등등등.

하지만 고립·은둔 청년들은 보편적 정서에 반기를 들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이라면 고립·은둔의 길로 들어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봤던 고립·은둔 청년은 대부분 너무 지쳤거나, 혹은 너무 큰 두려움에 세상으로부터 숨어든 사람들이었다. 감정이나 상태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다. 단지 사실일 뿐이다. 혹자는 지치거나 두려운 감정을 갖는 것조차 그들의 나약함을 방증하는 것이라 하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그 누구보다 가장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건 고립·은둔 청년 본인이다.


유승규 대표와 오은영 박사 모두 청중의 고립·은둔 청년 이해를 도우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은 마음이지만, 한편으론 과연 이 자리에 있는 부모님들이 고립·은둔 문제를 겪는 자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구심 또한 컸다. 왜냐하면 은둔 이전에 내가 상상했던 나의 미래와 은둔했던 내 모습이 너무나도 이질적인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은둔 생활을 했던 나조차도 이렇게 느끼는데 아예 다른 세상을 사신 부모님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달리 말하면 이 자리에 계신다는 건 그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진정으로 그들의 자녀를 이해해 보려고, 누군가는 그저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고 싶어 이 자리를 찾기도 하는 등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니겠지만, 여길 찾은 부모님의 자녀들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어진 질의응답. 고립·은둔 청년의 아버지로 보이는 한 청중이 오은영 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들이 준비하는 게 있는데, 제가 봤을 때는 그쪽으로 가려면 자격증을 먼저 따는 게 맞는 거 같은데 도통 하려고 들지 않네요. 아이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는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은영 박사도 "여기 계신 다른 부모님들의 마음도 비슷할 것 같아요."하며 웃음을 지었다.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함께 있어도 다른 세계에 사는 우리. 언젠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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