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물고기 한상림 종이의 풋 냄새를 맡은 지 오래다 색종이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접어가며 한 면에 직선을 그어 눈도 붙이고 지느러미도 달아주면 그 물고기들이 내게 말 걸어오던 날처럼 저녁 불빛 기웃거리던 걸음이 가게 앞에서 저절로 멈춰 섰다 자동 번호기가 조합된 여섯 개의 숫자를 능숙하게 골라잡는다 침도 튕겨보고 지난밤 꿈자리도 더듬어본다 토해 낸 숫자에 지느러미 여섯 칸을 매달아 먼바다로 풀어놓으면 숫자들은 물살 치며 나아갈 것이다 행운을 낚으려고 바다로 보내려는 것이 어젯밤 꿈에 대한 기대만은 아니다 이미 바닥을 드러낸 예금통장의 헐렁한 여백에서 불안한 아내의 눈빛이 떠올랐다 change의 g를 c로 바꾸며 자신감 넘치던 푸른 시절은 흘러간 지 오래다 낡은 지갑 속 천 원짜리 몇 장으로 검은 잉크 냄새나는 여섯 개 지느러미를 사서 항해사도 없고 숫자들의 집도 없는 아라비아 항구로 요술램프를 실어 함께 보낸다 아주 오래전, 다리가 넷이었다던 고래가 뜬소문 듣고 먹이 찾아 떠났다는 그 전설의 바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