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춘 옥 밥상에 앉은 다혈질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숨 죽 은 콩나물처럼, 시금치처럼 여자는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임”이라고 눈으로 쓴다 밥상에 앉은 남자가 여자를 쏘아본다 여자는 묵묵히 사골 찜솥을 준비한다 국물만 고아내면 서로의 간도 맞는 맞춤형이 되겠지 남자는 양푼 가득 마늘을 담아와 까기 시작한다 매운 냄새가 서로의 관계처럼 자극적이다 남자도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임” 집안 분위기로 쓴다 누가 초식형이었는지 누가 육식형이었는지 알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 깐 마늘만 수북이 쌓 여가는
봄의 페이지는 얼마나 될까
원춘옥
겉장을 열지도 않았는데 내용이 먼저 엎질러졌다 문장을 분실할까 서표를 꽂고 형광펜을 그었다 행간 사이로 삐져나오는 쉼표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휴식적인 것 필기체와 인쇄체 사이에서 자주 흔들렸다
속지를 끼웠지만 덜컹거리는 마음, 숨기지 못했다 접어 둔 페이지를 읽다가 얼굴이 붉어졌다 받침이 없어도 잘 읽히는 오래된 시 한 줄 자꾸 흘러내리고 있었다
봄의 쪽수는 얼마나 될까 바람이 흔들릴 때부터 꽃이 필 때까지 각주 없는 불통의 문장을 더듬는다 엷어진 지문이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감정의 폰트가 달라 당황하지 않기를 통증의 자간 크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