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유서 한상림 1 오로지 푸른 그늘을 넓히는 일뿐이야. 스스로 푸른 그늘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 저들에 의해 입양해 왔지만 그때부터 눈총을 받기 시작했어. 따가운 시선 피하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뿌리를 뻗으며 가지 끝에 푸른 싹 틔웠지, 눈비에 마른버짐 터질 때마다 달빛 바라보며 빈 가지에 새봄 새겼지. 온몸에 박힌 움펑한 옹이들, 봄 오면 거침없이 가지들이 잘려 나가고 전기톱 웅웅대는 소리 소름 돋을 때마다 살려 달라 아우성 쳐봐도 무심코 지나치던 사람들, 때론 능지처참당한 친구들을 보면서 파르르 떨었어. 모가지가 잘리는 참수형을 당해도 잠자코 나이테를 늘려가며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야 했지, 푸른 그늘은 우리의 목숨이니까 2 이제 한살이를 마감해야 할 때가 왔어.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가 대죄라면서, 참을성 없는 주인 양반이 땅속에 구멍 뚫어놓고 쓰디쓴 약물을 투입하기 시작했어. 서서히 썩어가는 뿌리로 말라가는 가지 끝이 푸석해지면 그늘을 접어야 해, 나는 귀신을 부르는 오래된 나무, 누군가 고사목이 된 나를 잘라버리고 플라스틱 그물망으로 그 위를 덮어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별 볼 일 없는 나무토막, 그러나 무심코 지나쳐버릴 시선들에게 유서를 적으며 그들을 용서해야 할 때가 왔어, 미공개된 채 묻혀질 테지만. 그래도 내 이름은 늘 푸른 그늘을 꿈꾸는 양버즘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