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그날도 우연히 성당 앞을 지나가는데, 무섭게 스치는 불안한 예감에 머리를 저으면서 절대로 아니라고, 잠시 내가 냉담을 하고 있지만, 다시 성당에 열심히 다니겠다고 생각하였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대로 그다음 해인 2003년도 9월 6일에 열여덟 살 고2 첫아들을 갑자기 하늘나라로 데려갔다.
7년 전 8월 어느 날, 그때도 분명히 기억이 난다. 누군가 아주 가까이에 있는 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그 예감에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당장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도 없었다. 아닐 거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단지 내가 무언가 불안한 일상에 그저 스치는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일 거라고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그때 역시 시숙이 60세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물론 지병은 있었지만, 그날도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 지 3일 만에 이별을 한 것이다.
지난봄인 4월에는 시가(媤家)에서 연거푸 불행한 일들이 터졌다. 시고모 댁의 사위가 갑자기 사십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 모두 놀랐는데, 연거푸 뜻하지 않은 시숙부님의 말기 암, 물론 85세 고령이라서 그럴 수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하선 말기 암을 수술한 이튿날인 첫 주 목요일 오전에 들려온 비보는 정말 지금도 미스터리다. 사촌 시누이가 은행 출근길에 지하철 계단에서 굴러 머리가 공처럼 굴렀던것마냥 깨지고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시숙부 암 수술 다음 날, 노모인 시숙모 아침상을 차려주고 출근하던 길에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5호선인 지하철을 타려다가 발을 헛디딘 건지? 그날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 단지 목격자의 진술에 의하면 혼자 굴러서 119로 실려 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올 7월 첫 주 언젠가 역시 또 이상한 예감이 불현듯 스쳤다.
역시 누군가 내 곁을 떠나게 될는지 모른다는 그 예감 때문에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난 예감으로 인한 이별을 떠올렸다. 그리고 6월 말경, 시아버님 기일이라서 시댁에서 1박 하면서 시어머님과 함께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틀간의 시간을 보냈다. 어머님 연세가 올해 90세이지만, 워낙 건강하시고 총명하시고, 지난봄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까지 하셔서 좀 힘들어하다가 많이 좋아져서 단 한 번도 걱정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7월 10일 일요일에 걸려 온 시누이 전화 한 통에 그만 대전 시댁으로 달려왔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시리라곤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오늘까지 충남대병원 중환자실에서 10일째 의식불명으로 누워 계시고, 내일은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머님과 마주 앉아 도란거리던 식탁에 혼자 앉아서 글을 쓴다.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잠은 안 오고 이러저러한 생각만 맴도는 밤이다.
어머님은 초복인 오전까지도 전혀 아무 문제가 없으셨다. 가까이 사는 시누이가 삼계탕을 끓여 드린다고 하며 전화했을 때만 하여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마도 노인정으로 놀러 가시려고 예쁘게 차려입고 그만 혼자서 쓰러지신 듯하다. 형님과 단둘이 사는데, 그날 형님은 대전 시내에 있는 고향 포도밭으로 일을 나갔기 때문에 그날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 단지 시누이가 엄마를 보러 왔을 때 의식이 없었고, 119에 실려 응급실로 모시고 가면서 아들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10일째 중복인 오늘, 어머님은 여전히 아무 의식이 없고 기관지에 삽관하여 중환자실에서 더는 해 줄 게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모시라고 하였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은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시누이와 함께 엄마 얼굴을 보면서 마치 의사라도 되는 양 진료일지를 쓰고 있다. 오늘은 엄마 얼굴색이 좀 나아 보이고 발가락도 살짝 움직였고, 입술도 움직였으니 지금 회복되는 중이라고 희망도 가져 보다가 어느 날은 얼굴색이 검어 보이고 너무 힘들게 호흡을 하시기 금방 가시면 어떡하냐고 울고불고 그랬다. 어머님은 요양병원에서 얼마를 더 버티실지 모르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는 의사의 말에도 우리는 마치 마술을 부려서라도 살리겠다는 의지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정말 자식들을 위해서 훌륭하시고 대단하신 어머님이시다. 그동안 살아온 삶은 마치 대하소설처럼 기막힌 인생이셨다. 쓰러지던 그날 아침에도 탁상용 달력 7월 10일 날짜에다 ‘영지가 닭 4마리 보내옴’이라고 일기를 써놓으셨다. 초복이라고 충주에서 근무하는 손녀딸이 보내온 닭이다.
어머님은 구십 평생을 사시면서 일기를 써오셨다. 전에는 가계부를 구해다 드리면 거기에 꼼꼼히 적으셨는데, 요즘 가계부 구하기도 어려워 잊고 있다가 탁상용 달력에 메모된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어떻게든 이어서 가계부를 사다 드릴 걸 내가 무심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언젠가 어머님이 평생 써 놓은 일기로 어머님 자서전을 써 드리고 싶다 생각을 하였는데,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가실 이별의 시간을 주실 줄 몰랐다.
나의 불길한 예감은 왜 이렇게 잘 맞는 걸까? 언젠가 주역으로 보는 사주풀이를 해 주던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는 예지몽이 아주 잘 맞는 걸까?
가끔은 내 자신이 나도 두렵다. 행여 언젠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그때도 이런 예감 때문에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을 미리 알게 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