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 사람들

한 집에서 태어난 자손들 모임

by 한상림

해마다 석가탄신일에는 시댁 식구들이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었다.

이 날은 시숙부 두 분 생신일이었기에 기념일로 정해놓고 이십 년 넘도록 빠짐없이 만나왔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코로나 19로 인해 두 번째 모임을 갖지 못하였다. 시아버님 4남매 가족이 모이면 정확한 인원 파악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였지만, 약 70여 명이 만나곤 했다. 1998년도에 처음'선량 사람들'이라는 가족모임을 만들어서 한 번도 빠지지않고 만나온 모임이다. 23년이 지나면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 수가 많이 늘었으니 사진 속 모습을 보면 먼저 떠난 사람들이 그립다. 하나둘씩 결혼을 하면서 아이를 낳아 안고 오던 어린 꼬마들이 이젠 성인이 되어간다.


석가탄신일인 오늘, 암투병 중인 여든다섯인 시숙부 생신이라서 찾아뵈었다. 식숙부 중 한 분은 돌아가신 지 오래이고, 시아버님 4남매 중 남은 두 분 중에서 한 분이 뜻밖에 말기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 투병 중이시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시숙부 암 수술 후 2일째 되는 날, 하필이면 사촌 시누이가 출근길 신정역 5번 출구 계단에서 굴러 혼수상태로 2달이 돼 가는데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시숙부님 수술하시고, 숙모도 몸도 안 좋으시니 아침밥을 해 놓고 가던 출근길이었을 거다, 은행으로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 계단에서 전철을 타려고 서두르다 발을 헛디뎠던 건지, 아직 자세한 내용도 파악하지 못하고 머리를 많이 다쳐 전혀 깨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효녀로서 결혼도 않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촌 시누이에게 이런 날벼락같은 일이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아무리 결혼을 하라고 해도 거부하고 오로지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시누이야말로 효녀인데, 불행은 이어서 온다고 왜 이런 일이 터진 건지 알 수 없다.


오늘도 시숙부님을 찾아뵙고서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 이하선 암 수술 후 훌쩍해진 몸으로 누워만 계시면서도 의식은 또렷하여 알아보시고 말씀을 하셨다.

"여느 때 같으면 오늘 대전에 다 모였을 건데...."

해마다 고향인 대전에서 만나던 "선량 사람들" 모임조차 올해는 깜빡 잊고 있었는데, 시숙부 말씀에 가슴이 아파왔다. 지난해 코로나 19가 터지고도 이럴 거 같은 예감 때문에 모임을 추진하였는데, 그 당시는 모임에 인원 제한이 없어서 만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몇몇 시누이들의 성화에 모임을 다 추진해놓고 취소하는 바람에 결국 2년 전이 마지막 모임이 되고 말았다. 왠지 모르게 연세 든 어르신들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꼭 갖고 싶었지만, 행여 무슨 일이라도 터질까봐 포기하였었다.


"작은 아버님, 생신 축하해요, 맛있는 거 사 드세요."

봉투를 내밀자 얼른 받아 들고는 왜 그리 많이 주냐고 하셨다. 이미 사촌 시누이에게 들어서 알지만, 숙부님은 아직 당신이 말기암이고 얼마 못 산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기 때문인지, 갑자기 돈에 많은 집착을 갖고 계신단다.

통장에 꽁꽁 평생토록 모아서 감춰 둔 비밀스러운 돈을 행여 뺏길세라 챙기시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통장을 들여다보시고 확인한다는 말에 가슴이 멍했다. 참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시집도 안 간 막내딸이 주는 용돈이며, 30여 년 전 퇴직하여 모았던 4천만 원이 당신의 마지막 재산이기에 맘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아끼신 돈이다.


참으로 선하게 사셨고, 자상하셔서 조카며느리인 나에게도 수시로 전화해 주시면서 내 건강을 늘 걱정해 주시곤 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를 친 아들 이상으로 생각하고 계신 듯하였는데, 이제 노환으로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여야 하는 시점이다. 워낙 섬세하고 예민하신 성격이라서 당신이 말기암이라 얼마 못 사신다는 사실을 아시면 좌절감으로 힘들어하실까 봐 사실을 숨겨야 했다. 더군다나 효녀인 막내딸이 혼수상태라는 사실을 아신다면 숙부님이나 숙모님이나 견디기 힘들 고통이라는 생각에 막내딸은 지하철 계단서 넘어져 가벼운 수술 후 입원 중이라고만 했다. 전화를 수시로 걸어서 전화기도 꺼놓고 넘어지면서 핸드폰이 박살 나서 코로나로 인해 통화도 안되고 병실에 아무도 못 가본다고만 하니 곧 집으로 돌아올 거란 생각이신 거다. 사실 중환자실에 있으니 면회조차 안 되는 상황이지만, 사촌 시누이 둘이 시숙부를 간호하기도 벅찬 상황이다.


얼른 이런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평정을 되찾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량 사람들이란, 남편의 고향인 대전시 용운동에 있는 마을 이름이 '선량'이기에 거기에서 태어난 사람들 가족을 말한다.

올봄, 선량 사람들 가족에 여러 가지 악몽이 이어져 왔다. 시숙부 가족의 비애와 시고모 가족에게도 있어서는 안 될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사위를 보내고 힘들어한다.


" 여느 때 같으면 오늘 대전에서 다 만났을 건데...."

시숙부님의 그 말씀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영 잠이 안 와 오늘 밤은 '선량 사람들' 카페에서 지난날 사진을 들척여 보면서 엊그제 같은 이야기를 추억처럼 되새겨 본다.

지금은 폐가로 남아있는 이 작은 집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선량 사람들'이다.

지금은 텃밭에 채소를 가꿔놓고 멀리서 오가며 뜯어다 먹는다. 옆 텃밭에 배추도 심어놓고 김장김치도 담그는 고향집 뒷꼍엔 200년도 넘은 모과나무가 있다.

메인 창 단체 사진은 이 고향집 대문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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