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랑 나랑

스크린도어 시 선정작 모음

-서울시 지하철 승강기 안전문 게시용 시 창작 공모 당선 작

by 한상림

2021년도 서울시 지하철 승강기 안전문 게시용 시 창작 공모 결과 204명이 선정되었다.

그동안 드문드문 응모를 하였었는데, 맨 첫 해인 2011년도 처음 시행 당시는 몰라서 응모를 못 했었고,

2012년도 두 번째 공모에는 <스크린 도어>라는 시를 응모해서 선정되어 상금 5만 원을 받았다.

3번째부터는 상금도 없고 너도나도 알려지면서 응모자가 많다 보니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 시행 당시 스크린도어에 게시된 시들을 시인의 눈으로 볼 때 영 시가 아닌 것들이 올려졌기도 하다. 그래서 '지하철 시'라고 하면 시큰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10년이 흐르다 보니 많은 시인들이 응모를 하여도 쉽게 선정되지 못한다. 그만큼 경쟁률이 커졌다.


올해도 응모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시 창작 수강생들 작품을 응모해 주면서 그냥 끼워 넣는 마음으로 아무 욕심 없이 마지막 날에 접수하였더니, 웬일? 수강생들 10여 명은 모두 탈락되고 내 작품만 선정이 되었으니 괜히 미안해진다.


선정된 작품은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2년 동안 실려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스크린 도어


한상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중문이 있다

전동차가 떠난 후

검은 스크린이 된 문에는

고흐의 한쪽 귀가 맴돌고

여배우의 슬픈 눈물방울이 날아다니고

어느 실직 가장의 구겨진 자존심이

아까부터 모니터 속을 검색 중이다

전 역을 출발한 전동차가

스르르 진입해 오면

다시 문이 되기 위해 긴장하는 벽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자화상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퍼즐을 맞추고 있다


-2012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게시용 시민 창작詩 선정작


이 시 속에는 최진실 여배우의 슬픈 눈물방울이 떠 있다. 그 당시 실직자도 많았고, 최진실의 자살 소식에 우울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안부를 묻다


한상림



은행알을 주우려고 허리를 구부렸다가

은행나무에게 공손히 안부 먼저 묻는다


천둥 울음은 무섭지 않았냐고

땡볕 열기 부채질로 식히면서

콩알만 한 알갱이 단단히 키우느라

눈물은 얼마나 삼켰느냐고


이파리들 노랗게 단장하며

떠날 채비 서두를 때

이별을 준비하는 어미 심정은 어떠했냐고


떠나는 자식들에게 잘 가라고

빈 가지 싹싹 훑어 내리면서

마지막 인사는 무슨 말을 했었냐고


- 2019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게시용 시민 창작詩 공모전

(이 시는 어느 역에 실린지 가보지 않아서 사진이 한 장도 없어서 아쉽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던 어느 가을날, 길거리에 떨어진 은행알을 보면서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자식들 모두 출가하여 떠난 빈 집에서 홀로 계신 어머님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마음을 즉흥적으로 써 내려간 시이다.


사진 출처<https://pixabay.com/users/Nikon-2110>


주름

한상림

검버섯 핀 노모 손등에 이랑이 생겼다

할머니 손이 왜 이래,

쭈글쭈글 밀리는 손등을 만지며

증손자가 두 눈을 휘둥그레 치뜬다


아가야,

이게 바로 사랑이란다

사랑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누군가를 많이 쓰다듬을 때

무언가를 듬뿍 퍼주고 싶을 때

눈금처럼 조금씩 자라나는 거지

할머니와 증손자 사이

사랑이 자라고 있다


- 2021 지하철 승강용 안전문 창작시 선정작


여고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올해 84세이시다.

유일하게 생존하신 은사님으로 자주 통화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통화를 하던 중, 늦둥이 손자가 선생님 손등 주름을 보고 한 이야기를 듣고서 썼던 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모 4번 중 3번째인 지난해 이 시가 탈락됐었는데,

올해는 선정되었다고 문자가 왔다.


나 역시도 신인상 시를 6년째 심사위원으로 심사하고 있지만, 사실 시의 정답은 없다.


어느 정도 심사위원과 코드가 잘 맞아떨어지면 좋은 시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시는 문학적인 시보다는 인간적인 냄새가 나고 따스함이 묻어나는 시가 대부분 선정된다.



<표지 사진 신의식 작가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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