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랑 나랑

오래된 가을

- 가을은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자

by 한상림

가을은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자



1년을 우리의 일생으로 표현한다면 9월은 중년에 해당된다. 중년의 감성으로 맞이하는 9월은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는 가을이다. 가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추억”이다. 그것도 풋풋한 추억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흑백 필름에 담긴 빛 바랜 기억들이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기억 속에는 꼭꼭 숨겨진 사랑, 가슴 저린 이별, 혹은 감추고 싶은 소중한 이야기들이 오래된 가을처럼 자리해 있다. 그 주인공이 나였다가, 혹은 너였다가, 그 누구라도 좋다. 그저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새롭게 맞는 이 가을이 훗날 지워지지 않을 또 다른 추억으로 머물러 있다가 현재의 모습을 또렷하게 환기시켜 주지 않는가.


오래된 가을

- 천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천양희 시인의 <오래된 가을>을 펼쳐 들면 정작 우리가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눈으로 보는 가을이 그저 전형적인 가을의 모습이라면, 마음으로 보는 가을은 인생의 깊이를 성찰하면서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올 가을에는 오래된 스티커 앨범 속에 붙어있는 흑백사진들을 들춰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 안에 가장 후회하고 아쉬운 것이 무엇인가를, 남은 생을 위해 어떤 모습으로 가을을 그려 가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맞이하고 싶다.


~이 글은 2012년도 10월에 <아트앤아트> 월간 미술잡지의 문화산책 코너에 실렸던 글입니다

https://youtu.be/OrfJBol371c?list=TLPQMTAwOTIwMjGowu 이 주소를 클릭하면 필자가 직접 낭송한 유투브 <시문학 산책>이 열립니다.

표지의 낙엽 편지는 1980년 광주사태가 있던 그 해 가을,

첫 사랑에게 보내 주었던 편지다.

이 낙엽 편지가 40년이 지나서 카톡으로 날아서 되돌아왔을 때,

문득 그때 풋풋한 소녀 감성과 추억이 잠시 고스란히 떠올랐다.

한때 스무살 그 풋풋하고 설레였던 첫 사랑였는데

세월 지나 이렇게 빛 바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서로 오래 된 가을처럼 늙어가면서

과거와 현재를 서로 이야기 해도 잘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좋다

비록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지만,

그 시절 사랑이 뭔지 잘 모르면서 꿈꿨었던 사랑으로 함께 물들어

추억을 생각하면 여전히 기쁘고 설렌다.

앞으로 한 10년 후에도 지금의 이런 기억들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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