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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Oct 14. 2021

노년기에 피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

- 한상림 칼럼

  --인생이란,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잘 써서 마무리해야 하는 이야기




‘인생(人生)’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 권의 ‘장편소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장편소설 속 주인공인 것이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사람으로 탄생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긴 여행을 하면서 각자 다른 모습과 다른 내용의 스토리를 열심히 써가야 하는 것이 인생(人生)이다. 때문에 우리는 각기 다른 내용의 장편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성실한 작가로 열심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추구하고 있는 그 무언가를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인생의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책의 내용이야 쓰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 다르고, 길이의 길고 짧음 역시 주어진 운명 안에서 각기 다를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쓰다가 지우면서 고쳐도 쓰고, 나름대로 아름다운 삶을 열심히 써 가려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죽어라 열심히 노력을 하며 써 봐도 제대로 쓰지 못하여 방황만 하다가 도중에 포기를 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훔쳐 읽고 표절을 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성공한 삶도 실패한 삶도 모두가 우리에겐 인생인 것이다.


복지관에서 중식 봉사를 하다 보면 한때 아주 잘 나가던 어르신들이 점심식사 한 끼를 드시기 위해 줄을 서는 모습을 보고 다양한 생각들이 스치곤 한다.

어떤 할아버지는 기다리는 동안에도 영문으로 된 성경책을 열심히 읽고 계시고, 어떤 할머니는 바이올린 악기를 어깨에 메고 들어오시면서 나름대로 곱게 화장을 하고 멋을 부렸지만 구부정한 허리와 몸은 나이 듦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어정쩡하다.


지팡이를 짚거나 유모차를 밀고 들어오면서 기웃기웃, 같은 성(性)을 가진 사람들의 자리를 찾아 불안한 걸음걸이로 입장을 하신다. 영락없이 모두가 전형적인 노인의 걸음 걸인데도 왠지 모르게 아름답게 보인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마지막 노년의 꽃을 이곳 복지관에서 아름답게 피우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머잖은 내 모습이 연상되어 우울하기도 하다. 늙어가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왠지 모르게 늙고 병들어 힘이 없고 나약해져 쓸쓸해 보이는 노년기는 너무도 외로울 거 같아 서글프다.


한때는 저 어르신들 한 분 한 분 모두가 의기양양하고 당당하게 잘 나가던 소설 속 주인공으로 활짝 핀 꽃이었으며 별(star)이었을 것이다.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로 젊음을 과시하면서 청춘을 불태웠던 멋진 남자였을 것이며, 자식과 남편을 위해 헌신하며 자기를 모두 내어주던 가장 따스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꽃이었을 것이

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이길 장사는 어느 누구도 없다. 그나마 복지관에서 뭔가를 배우고 운동도 하고, 사교춤을 추거나 악기도 배우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힐링을 하면서 서로 소통을 하고,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매일 눈 뜨면 갈 곳이 있어 곱게 화장도 하고, 벗어진 머리에 모자도 쓰고 거울 앞에서 나름대로 멋을 부리면서 비슷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곳이 있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않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면 복지관에 나와서 다양한 혜택을 받는 거조차 꿈도 못 꿀 것이다. 이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남은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가를 어르신들 모습에서 읽는다.


‘65세 이상 노인’의 부류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초조해지고 뭔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어떻게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할는지 막막한 생각도 든다. 그나마 20여 년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지역사회에서는 공인으로 알려져 있고, 문학인들 속에 포함되어 글을 쓰고 여기저기 발표도 하면서 지면으로 만나는 독자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노후에도 기다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미흡하나마 위안도 얻게 된다.


지금은 백세시대(百世時代)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앞으로는 백세 이상 수명 연장이 가능하게 됐다. 우리의 조상들은 환갑 나이인 60세까지 살기도 참 힘든 짧은 수명이었다. 그래서 환갑잔치에 인생의 큰 의미를 담아 환갑잔치를 하였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인생은 육십부터라고도 한다. 육십쯤 되면 자녀들을 대부분 출가시킨 후 여러 가지로 좀 한가해질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육십은 ‘인생의 청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세계를 빛낸 사람들 중에는 코코 샤넬과 네오 나르다빈치, 빅토르 위고 등 많은 위인들이 50세 이후에서 70세 중반까지 열정적인 삶을 살면서 이름을 남겼다. J.R.R 돌킨은 62세 <반지의 제왕>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열풍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테오도로 모노라는 여성은 93세에 티베트 산맥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또한 일본의 19C 유명한 화가 가츠사카 호쿠사이는 다섯 살 때부터 사물의 형태를 스케치하는데 열중했고, 쉰 살부터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일흔 살이 되어서야 새, 동물, 곤충, 물고기의 진정한 특성과 초목의 중요한 본질을 약간 파악했다고 한다.


‘백세 인생’이라는 노래도 있다. 이 노래가 유행하기 전에는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그러다 다시 ‘60세부터 150세까지 염라대왕이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이러이러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는 ‘전해라’ 열풍이 불고 있다. 이는 단순한 멜로디와 함께 누구나 긍정하게 되는 가사 말이 비교적 따라 부르기 쉽고 아이러니한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더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직설적으로 누군가 대신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 듦에 따라서 노쇠해지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육신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구구팔팔 이삼사’, 즉 구십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죽어야 한다는 유머도 있다. 또한 99세를 “白壽”, 즉 ‘百’에서 ‘― ’ 한 획을 뺀 글자가 ‘白’이기에 ‘백수(白壽)’라고 부른다.


인생은 매 순간순간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영아기와 유아기를 거쳐 청소년기, 성년기, 중년기, 노년기의 백수까지 하루하루가 한 장 한 장의 소설책 줄거리 속 이야기인 것이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가장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이 바로 ‘노년기(老年期)’)라고 하고 싶다.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희로애락을 통하여 그 어떤 잘못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고 사소한 실수도 웃으면서 묵묵히 바라보고 포용해주는 성자(聖子)처럼, 따스한 미소를 지닐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졌으면 좋겠다.


훗날 누가 읽어보아도 아름답고 감명 깊은 장편소설 속의 주인공으로서 한 권의 책 속에 남는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이 글은 2018년도에 쓴 글이다. 이제는 복지관에서 만날 수도 없는 그 어르신들 안부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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