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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가람 Jun 09. 2023

#단상 1. 나에게 흐른 엄마의 시간

오랜만에 부모님댁에 와 거실 한가운데, 먼지가 켜켜이 쌓인 앨범을 펼치고 엎드렸다.

한장 한장 사진에 찍힌 촬영 일자에 기억을 더하며, 지난 시간을 복기하던 중 눈시울이 붉어져

소매로 눈가를 한번 훔쳤내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키울때 힘들었어?"

"힘들었지! 저 작은 녀석이 언제 클까 했는데 벌써 니가 그렇게 컸다. 너 키울때, 어느날은 참 시간이 안간다 싶었는데 지금은 조금 섭섭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났다 싶네."


앨범을 보다 뜬금없이 눈물을 훔친 것도, 부엌에서 설거지로 바쁜 엄마에게 갑작스런 질문을 한 까닭도

앨범 속 내 성장과는 대비되는 부모님의 시간을 발견한 탓이었다.


마치 난 부모님의 시간을 양분 삼아 자라온 것만 같았다.

그들의 시간은 고스란히 흘러 나에게 쌓였고

그렇게 난 그들의 삶이 되었다.

나의 탄생과 동시에 그들의 인생이 나로써 존재한 탓에,

성인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난 나의 부재는 그들의 지난 시간을 허망하게 했을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종종 내 부재를 슬퍼했다고 한다. 나중에 동생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집에 머물다 부대로 복귀하고 나면

며칠간 엄마는 헛헛한 마음에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내 옆에 와 앉은 엄마가 물었다.

" 너 이때 기억나?"

엄마의 손가락이 내 다섯살 시절에 가 닿았다.

"응, 나 기억나!"

사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짧은 호흡으로 대답을 마치고

엄마의 입에서 이어질 그때의 흐린 기억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 이때, 진짜 귀여웠는데 말야.... 엉덩이는 토실토실해가지고,

이때는 말도 잘 들었어, 모자도 선글라스도 씌워주면 씌워준대로

엄마가 해주면 뭐든 해주는대로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의 말 끝에 묻은 아쉬움과 그리움을 닦아내며 다시 물었다.

"엄마는 이때가 좋았어?? 나 키울때, 그때가말야...."

"그럼! 얼마나 좋았는데, 그치만 미안한 것도 많아. 처음 너를 낳아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잘 몰랐어. 그때는 전부 서툴기만했으니까. 그래서 너한테 미안한 것도 많아. 지금이라면 너를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잘 자라줘서 너한테 정말 고마워."


엄마의 대답을 미루어 짐작컨데, 엄마의 말끝에 묻어있던 아쉬움은 나를 키우는 동안 서툴고 어색했던 자신의 손길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와 돌이켜보면, 지금 나보다 어린 나이였을 부모님에게 나를 키우는 일이란 절대 녹록한 일이 아니었음을

지난 삶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인지한 덕에, 양육에 필요한 부모의 노련함과 익숙함의 정도와 상관없이

한 생명을 키워낸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충만해졌다.


앨범이 한장 한장 넘어갈수록 나와 엄마는 현재의 모습과 점점 닮아간다.

엄마의 시간이 나에게 고이듯, 엄마는 조금씩 수척해졌고 나는 그 속도만큼 자랐다.

그렇게 시간이 세대 간 대가(代價) 없이 이동하는 동안 엄마는 혼자 얼마나 울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며, 최근 엄마에게 짜증냈던 일이 떠올랐다.


(월요일, 그것도 너무 바빴던 이상한 날에 별 게 아닌 일로 엄마는 나에게 연락을 했다.

집에 수전이 망가져서 거실에 물이 새고 있다는 것이다.

동네 인테리어 업자를 불러 수리하면 될 일을 이렇게 바쁜 날 사람을 신경쓰게 해야 할 일인가? 싶어

차갑게 문자를 보냈고, 엄마는 그 일이 서운했는지 부모 일에 신경을 안쓴다는 타박성 문자를 보내왔다.

그 당시에는 어린아이같은 엄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깊은 한숨과 함께 더이상의 연락을 멈췄다.

바쁜 일과가 끝나고 퇴근시간 무렵, 집엔 아직도 물이 새고 있는지와 감정의 앙금이 아직 남아있는지가

궁금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고장난 수전은 동생이 말끔히 고쳤지만, 엄마의 서운함은 아직 멈추지 않은 듯했다.

엄마는 앞으로 나에게 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연락하지 않겠다고 한다. 바쁜 데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하다며,

그런 엄마에게 오늘 너무 바빴으니, 이해해달라며 엄마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무한대라고 너스레를 떨며 전화를 끊었다.)


성인이 되어 그들의 둥지를 떠난 내가 아직도 당신들을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확인이 필요했던 것일까?

아니면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었을까?

어릴적 내 우주였던 그들이, 지금은 고장난 수전 하나로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묻는다.

나의 보호자였던 그들이, 어느샌가 나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나를 낳은 죄! 그 하나로 이유도 대가도 없이 모든 것을 빼앗기고는

원망도 억울함도 없이 관심 그 하나만을 요구하는 엄마를 보며

내 마음도 고장난 수전같이 미안한 감정이 멈추지 않는 하루였다.



하루의 기억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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