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당신이 궁금해.
일종의 관음증 같은 것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뻔한. 호기심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귀를 열다가 흘끔흘끔 보게 되다가 용기가 있거나 얘기 할 기회가 닿으면 빤히, 상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 사람을 보게 되는 것.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저 물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지는 그런 욕망이 생긴다. 직접적으로 대놓고 묻고 싶진 않으니 SNS에서 그 사람을 검색 하고, 타임라인을 주루룩 내려보면서 해소하곤 한다. 찌질해 보이겠지만 한 번씩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에 만나던 사람이라거나 관심 있는 사람이라거나 그 누구든.
J는 들여다 보고 싶은 여자였다.
이름을 모르니 J라고 부르기로 멋대로 정해본다. 수많은 알파벳 중에 J는 뭔가 부드럽다. 제이. 받침도 없고, 발음도 편하다.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난 J를 좋아한다.
친한 사장님의 맥주집에서 촬영이 끝나고, 술을 깨기 위해 수다를 떨며 앉아 있었다.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혼자 들어왔다. 열심히 핸드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귀가 열렸다. 얘기를 들어보니 둘은 아는 사이 같았는데 오랜만에 온 손님인 듯 했다. 여자는 바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맥주를 시킨다. 강렬한 흑맥주다.
호탕한 목소리와 웃음소리.
나는 뚫어질 듯 한 핸드폰에서 여자에게로 힐끔힐끔 시선을 옮겼다.
한쪽으로 넘긴 웨이브진 앞머리와 질끈 묶은 머리, 그리고 카키색의 야상.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부라서 더욱 궁금해졌다. 여자의 저 앞머리에 강렬한 빨간 꽃 코사지를 꽂아주고, 새까만 드레스를 입혀 보고 싶었다.
그녀가 그 가게에 처음 온 날, 그녀는 만취 상태 였던 것 같다. 다음 날 너무도 정중하게 다시 찾아 와 아이스크림을 쥐어 주고 갔다는 것을 보면. 다음 날 일어나서 그녀는 '내가 왜 그랬지.' 했다지만 사장님은 유쾌하고 즐거웠다고 표현했다.
내가 J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같다. 농담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웃기려고 애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하는데 내 입꼬리가 말했다.
"저 여자가 궁금하지 않아?"
수긍했다. 고개를 들었다. 용기를 낸 셈이다. 사실 여자끼리가 더 어렵다. J는 웃음소리 처럼 호탕하게 날 받아 주었고, 나는 J와 몇 마디 즈음은 섞을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써클렌즈를 꼈다. 서로 눈을 보고 얘기하지만 나는 장막을 하나 치고 있는 셈이다. 나는 J를 바라보지만 J는 나를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상한 희열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스스로 변태인가를 의심했을 정도로.
J는 깊은 눈매와 큰 코를 가졌다. 웃는 모습이 예쁘며 화장기 없는 강단 있어 보이는 얼굴이 매력적인 여자. 내 예상이 맞았다. 그녀는 강렬한 탱고 같은 여자였다. 아, 붉은 립스틱을 칠해주고 싶다. 새빨간.
머릿 속에서는 J를 대상으로 인형 놀이를 해댔다. 아. 아름답다. 나의 관음증은 또다른 상상으로 지속적으로 연결 되곤 하는데 이것 또한 일종의 희열감을 주곤한다. 그러나 간혹 이게 뭐람, 싶은 이도 있는데 그녀와 같은 사람들을 들여다 보는 것은 늘 즐겁고, 행복하다. 그래서 자꾸 더 들여다 보고 싶어진다.
늘 J 같은 여자가 되어야지 생각한다. 하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고, 생긴대로 살기로 했으니 이상향 즈음으로 남겨 두기로 한다. 내 관음증은 이상향 혹은 이상형에 유독 집착이 심하다.
그녀는 미술을 한다고 했다.
J의 작품이 궁금해졌다.